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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
Hwanghyunsoo

 

 고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집 근처에 자주 가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30대 중반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인데, 그들은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함께 쫓겨났다고 한다.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니 집 지하에서 카페를 시작한다. 국어 선생이었던 남자 주인은 음악을 좋아해서인지 실내에 70년대 다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레코드판을 트는 DJ 부스를 만들어놓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곡을 틀어주곤 했다.

 

그 가게의 단골 중에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했다는 30대 초반의 여성 화가가 있었다. 그녀는 혼자 카페에 와서 글을 쓰기도 하고, 바쁠 때는 주인을 도와 술도 나르고, 레코드판도 골라 음악을 틀기도 하는 준 직원(?) 같은 손님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온 손님들은 그녀를 대충 알바생으로 알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을 먹은 일행과 2차로 그곳에 갔더니 그녀는 어느 테이블에 합류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벌써 술을 많이 마신 듯, 목소리 톤이 높아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도 대화 내용이 들렸다.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세요?” 아무도 대답을 않자, “오늘은 김현식이 죽은 날 이에요.”한다. 그렇게 유식함(?)을 뽐내면서 휘청거리며 DJ실에 들어가 레코드판을 튼다.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그녀를 쫓았다. 혹시 그녀가 넘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잠시 뒤 음악이 흐른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다. 그날 그 김현식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애절한 멜로디는 잊을 수 없다.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당신의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철이 없는 욕심에 많은 미련에/ 당신이 있는 아닌지 아니겠지요.”

 

그날은 11월 1일이었다. 바쁘게 살던 시절이라 며칠인지도 몰랐는데, 그동안 흘겨 들었던 <내 사랑 내 곁에>가 김현식의 노래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다. 얼마나 팬이면 ‘가수가 죽은 날까지 챙기나?’ 하며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카페에 들렸는데, 주인이 맥주를 테이블에 놓으며 “소식 들었죠?”한다. “네, 무슨…?” 그의 말에 의하면 김현식의 노래를 틀었던 그녀가 그날 술이 많이 취해서 운전을 하고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참, 허망한 이야기였다.

 


▲김현식 숨지기 이틀 전 녹음한 노래가 <내 사랑 내 곁에>이다.

 

 김현식과 유재하는 3년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날인 11월 1일에 세상을 떠난다.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 재학 중,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는데, “학생 신분으로 음악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다”는 학교의 지적을 받아 6개월 만에 그만둔다.

 

유재하의 솔로 데뷔 앨범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1987년 8월 발매된다. 직접 작사, 작곡, 편곡도 했고 오케스트라 반주를 제외한 피아노, 기타 등 악기 연주도 도맡았다. 싱어송라이터에 연주, 프로듀싱 까지를 했던 멀티 플레이어 뮤지션이었다.

특히 그는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세련된 멜로디와

 


▲25세에 세상을 떠난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유재하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한 차원 높은 음악을 선보였다. 여기에 한 편의 시를 읊는 듯한 가사, 담백하고 기교 없는 보컬까지 더해져 평론가들로부터 “한국 대중음악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유재하는 앨범이 나온 지 약 두 달 만인 1987년 11월 1일 음주운전을 한 친구의 승용차에 동승했다가 맞은편 택시와 정면충돌해 세상을 등진다.

 

김현식은 유재하의 장례식장에서 목놓아 운다. 두 사람은 유재하가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 앨범 작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는다. 김현식은 불 같은 성격 탓에 후배들에게도 엄한 선배였지만 유독 유재하는 아꼈다.

 

김현식은 198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1집으로 데뷔했다.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추억 만들기> <내 사랑 내 곁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김현식 특유의 거칠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대한민국 최고 보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현식은 큰 인기를 누렸지만, 대마초 파문에 연루되기도 하고 이혼의 아픔도 겪는다. 술에 의존하다 간경화로 투병하지만, 그는 음악을 놓지 않았다. 유작인 6집 앨범 녹음에 몰두했고 병상에서도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32세 때인 1990년 11월 1일 마지막 음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그의 마지막 유작 <내 사랑 내 곁에>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가 녹음한 것을 음반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음반은 잡음도 있고 쉰 목소리에 힘도 없다. 하지만 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가창력은 살아있어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유재하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재하 음악 장학회’를 설립하고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를 통해 수많은 인재를 발굴한다. 김연우, 유희열, 방시혁 등이 이 대회 출신이다.

 

한편, 김현식의 저작권은 당시 8살이던 아들의 소유가 된다. 그는 어머니가 4살 때 이혼을 해서 할머니의 품에서 자란다. 중고등학교를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부하는데, 캐나다에서는 대중음악 활동도 열심히 한다. 1999년 귀국해 가수로 데뷔하고 김현식 추모 공연도 하지만, 사업 실패로 많은 빚을 진다. 생계가 어려웠던 그는 김현식의 저작권을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드러머였고 유재하의 절친한 친구였던 전태관이 2018년 12월에 신장암으로 사망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유재하, 김현식, 전태관은 결국 ‘겨울’을 넘지 못했다. 겨울은 이래저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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