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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라도 쉴 이 없다

호화히 섯을 때는 오가는지 다 쉬더니

잎지고 가지 꺾인 후로는 새도 아니 앉는다

 

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로도 쓰지 못하며 그 밑에서 앉아 쉬었다 가는 사람도 없구나. 나무가 잎이 무성하고 호화로운 모습으로 서 있을 때는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이 모두 잠시 쉬어가더니 잎 떨어지고 가지 꺾인 후로는 새도 와서 앉지를 않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 권력과 돈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자주 들락날락 하더니 돈 없고 권력 떨어진 다음에는 사람도 없다는 야박한 세상 인심을 노래한 것이다(세상 인심이 야박하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런 것이다). 이 시조는 꼭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 호화롭던 시절과 늙어 병든 시절에 받는 인간적인 대접으로 보아도 무관하게 적용될 수 있는 시조이다.


우리 인간이 돈과 권력에 약하다는 말은 불필요한 만고의 진리일 것이다. 사람이 돈과 권세를 따른다는 것은 인간사회가 조직되던 그 날부터 있었던 일, 어제 오늘 갑자기 유행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권력 앞에 머리를 숙이고 돈 앞에 목소리가 부드러워지는 행동을 너무 미워하고 흉 볼 필요는 없다.


위의 시조를 지은이는 송강(松江) 정철이다. 그는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우리 문학의 보배요 진정한 문호다. 그가 정치가로서 정여립 사건을 다스릴 때 수많은 정적들을 뚜렷한 증거도 없이 대량학살을 저지른 잔인함이 그의 문인으로서의 걸림돌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잔인하다고 좋은 문인은 못 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매우 약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정치'하면 시조문학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잔인하고 문학활동에는 방해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남달리 강하고 권력이 가진 힘을 마음껏 누리려는 송강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쉽사리 따라가지 못할 우수한 문학작품들을 쏟아 놓는 것을 보면 문학과 권력은 구태여 상반된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같다.


이국문(李國文)이 지은 '중국 문인들의 비정상적인 죽음'을 보면 이백 같은 이는 음풍농월이나 하는 시인으로, 돈과 부귀영화를 뜬구름으로 보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는 이 세상을 하직하는, 눈을 감는 바로 그날까지 권력 주위에 맴돌며 황제의 부르심을 꿈 꾼 시인이지 결코 세상만사를 초연하게 보며 지는 해, 뜨는 달만 노래한 시인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돈과 권력 앞에 고개를 수그리게 돼 있다.


이화여대 교수 정재서에 의하면 옛날 중국에서는 황제가 되자면 시(詩)를 짓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무척 중요시 하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중국의 황제 중에는 송우 휘종부터 모택동, 주은래까지 빼어난 시인들이 많다고 한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데 보내고져

님께서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소나무 숲에 눈이 오니 소나무 가지마다 꽃이 핀 듯 아름답구나. 그 한가지를 꺾어서 님에게 보내고 싶네. 님께서 내가 보낸 눈꽃을 보신 다음에야 가지마다 붙은 눈이 녹아 버린들 어떠리-.
 

아름다운 눈꽃을 사랑하는 님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였다. 송강이 생각하는 님은 누구일까? 임금이었지 싶다. 송강은 평생 임금에 잘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뵙고 싶어요" "그리워요" 등의 말을 해가며 달라붙는 송강을 미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임금의 미움을 받고 멀리 귀양을 가서도 임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고백해대니 귀양을 가서 곧 풀려나곤 한 것이 모두 대여섯 번에 이르렀다고 한다.


위의 노래는 내 어머님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내 어머님은 한일합방 전인 1901년 왜관읍 매월동 광주 이씨 집성촌에서 태어나 16살 되는 해에 안동 예안 역동으로 시집오셨다. 평생 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신 분이지만 뛰어난 기억력으로 당시 부녀자들에게는 금서(禁書)로 되어 있는 '춘향전' 같은 소설을 비밀히 읽고 아예 외어 버리셨다 한다. 소동파의 '적벽부' 같은 것은 뜻도 잘 모르시면서 마구 달달 외우고, 백거이의 '장한몽' 같은 것도 외운다. '춘향전'에 비하면 송강의 "송림에 눈이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같은 단가는 '새발의 피'가 아니겠는가.

 

내 마음 베혀내어 저 달을 만들고져

구만리 장천(九萬里長天)에 번듯이 걸려 있어

고운님 계신 곳에 비우처나 보리라

 

이 가슴 속을 베어서 저 달을 만들고 싶다. 그리하여 넓고 넓은 하늘에 떠 있으면서 임금님이 계신 곳을 훤하게 비춰드리고 싶다. 이 얼마나 임금에 대한 충정(忠情)이 지극한 노래인가. 임금인들 이런 충정을 보이는 신하를 어찌 가까이 두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송강이 '아첨문학'의 대가라고 나무라는 현대 문학인들은 바로 이런 노래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

뉘 손에 태어났기 모양조차 같은가

한 젖 먹고 길러져 있으니 딴맘 먹지 말아라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누구한테서 태어났기에 그 모양도 같지 않는가. 어머니의 한 젖을 먹고 자라나서 딴 마음은 먹지 말아라.
 

형제간 한 어머니에 태어났으니 딴 마음 먹지 말라고 한 송강의 노래다. 그 훈계도 세월이 변하여 그 힘을 잃고 말았다. 요새는 어미애비가 유산이라도 조금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는 날에는 남은 동기간에 한푼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법정에 서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 않는가.


송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26살 때 장원급제한 송강은 암행어사로 관북지방에 나갔다. 송강은 어느 고을의 기생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이튿날 아침 떠나기 전에 그 기생에게 말했다. "내 10년 후에는 감사가 되어 여기 다시 오리라" 이 말을 고깝게 들은 기생은 "감사는 귀하고 높은 벼슬이니 찰방이 어때요?" 송강이 한 말을 완전 무시한 것이다. 찰방은 지위가 낮고 얻기가 쉬운 자리다. 10년 세월은 무정케 흘러 감사가 된 송강은 다시 그 곳을 찾아갔다. 그 기생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송강은 자기와 그 기생의 늙었음을 한탄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 한 수를 불렀다.

 

십 년 전의 약속이 감사나 찰방이었는데

비록 내 말이 맞긴 했으나

모두가 귀밑 털이 반백으로 세었네

 

위의 노래에서 송강의 예술가 다운 기질, 호방한 성격을 잘 엿볼 수 있다. 십년 전 일은 물어 무엇하리. 무정세월의 풍화작용은 생각도 않고-.(20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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