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이라는 것은 자신이 속한 국가 공동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말한다. 따라서 ‘애국’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는 최상의 가치를 향유하는 지위에 있다. 우리는 지금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장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 처한 나라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인간은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타인과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하는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적막하다. 우리는 기쁨, 즐거움, 안타까움 등 갖가지 감정을 실어 교감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사랑한다.
전통적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등 살아있는 생명 전체, 지구 생태계와 지구 그 자체까지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살아 있는 유기체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유기체인 조직과 단체도 사랑할 수 있다. 국가도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즉 애국심도 우리가 지니고 살아가는 여러 사랑의 감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애국심은 다른 사랑의 감정과는 다르다. 사랑의 대상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고귀한 사랑의 감정일 수 있는 애국심 뒤에는 결코 사랑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야비한 얼굴이 숨어있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대한 증오심 또 혐오감이 그것이다. 애국심은 내가 속한 국가를 사랑하는 감정인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를 배척하는 감정이다.
국가는 때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쟁과 학살이라는 끔찍한 참화 속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다른 어떤 사랑의 감정도 이런 엄청난 악을 저지르도록 사람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우리는 보통 조국 또는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애국심을 가지는 것을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로 여긴다. 애국심은 사랑의 감정이기 때문에 중요한 미덕으로 널리 인정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국가 그 자체 또는 국가가 체현하는 어떤 가치인가? 아니면 같은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이익인가? 그 어느 것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애국심은 사랑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 민족 또는 국민은 다른 민족 또는 다른 국민의 억압을 받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각하게 된다. 애국심 또는 민족애는 그런 경로를 거쳐 형성된다.
우리의 민족의식, 우리의 애국심은 통일신라 이후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가의 침략과 억압을 받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애국심이란 공동체를 위해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려는 개인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이는 때때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희생까지 요구한다.
이데올로기의 아우라에 취해서 또는 폐쇄적 민족주의 운동에 휘둘려 심겨지는 애국심은 악이다. 진정한 애국심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다. 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존중되고 그들의 활동이 존중될 때 그 구성원들은 자신의 공동체를 목숨 바쳐 지키려는 마음을 갖게 되고, 거기에서 자기희생을 담은 애국심이 나오지 않겠는가.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공동체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다. 씨족공동체들이 통합되어 작은 부족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폭력과 살상이 동반되지 않았을 리 없다. 한반도의 경우 부족국가 단계를 넘어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이 성립한 과정은 물론이요, 삼국시대에도 내내 전쟁과 살상이 끊이지 않았다.
삼국통일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일으킨 대규모 살상과 전쟁의 산물이었다. 후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왕조가 성립되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이 모든 테러와 살상을 망각하게 한 시간의 축복이 없었다면 한반도에 단일한 민족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원나라와 청나라의 침략, 임진왜란과 제국주의 강점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면서 끊임없이 재생해낸다. 이 기억이 살아 있는 한 우리 민족은 중국이나 일본과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 겨레가 한반도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다시 국가적 통일을 이룬다면 한국전쟁의 처절한 악몽의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 기억이 계속해서 발휘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망각과 용서가 필요하다. 따라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이념의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생각을 혼동하고 무력하게 하는 것이 사상전이다. 사상은 생각하고, 분별하고, 선택하고, 비판하고, 행동하게 하는 신념체계를 형성해 준다.
태양 아래 영원한 것이 없다는, 모든 것이 헛되고 또 헛된 이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영원성은 오로지 민족과 조국뿐인 것이다. 따라서 애국심은 단연, 인간이 지녀야 할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고귀하다. 애국심은 분명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작을수록 애국심은 더욱 강한 배타적 감정이 된다. 사랑의 대상이 크고 넓어질수록 애국심의 배타성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시대가 종결되어 인류가 하나의 세계 정부 아래 살게 되기 전까지는, 애국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배타적 사랑과 열정이 아주 약화되거나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애국심은 자기 나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사랑하고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다.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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