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에는 비가 많이 내려 계절을 헷갈리게 하더니, 7월의 후끈 달아오른 땡볕으로 텃밭에 심어 놓은 오이들이 넝쿨지어 힘차게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고, 토마토, 마늘, 고추도 실하게 자라고 있다. 눈부신 햇살 아래 의연하게 서있는 나무, 그 아래 작은 꽃들, 모두가 생명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7월은 녹색의 계절이다. 시간이 탐욕스런 입맛을 다시며 황급히 사라져간다. 산은 검푸른 숲이 우거지고, 들에는 밀과 채소들이 쑥쑥 자라나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초록빛 밀밭이 넘실대고, 옥수수 밭이 한꺼번에 휘어져 파도물결을 이룬다. 계절은 어느새 성숙과 성장의 호르몬이 자르르 흐르고 얼굴엔 청년의 열기로 가득 차있다.
뜨거운 뙤약볕에 만물이 축 늘어져 맥을 못추는 이 여름철에 초록빛으로 변해버린 집 뒤뜰에 우리들의 눈을 황홀하게 해주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지난 봄 어느 꽃보다도 먼저 마치 뭉게구름처럼 흰 꽃을 피워 미풍에도 꽃비를 날리며 은은한 향기를 풍겨주던 체리(버찌)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겨울이 물러나자마자 이른 봄, 뒤뜰에 제일 먼저 살구꽃과 체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한때 봄의 잔치를 벌였다. 메마른 가지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더니 그 꽃에서 고운 빛깔이 생겨나고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와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했다.
우리 집에 옮겨 심은 후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꽃을 피웠다. 뒤뜰을 볼 때마다 금년에는 체리와 살구가 많이 열릴 것이라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나뭇가지에 빨갛고 분홍빛 구슬 같은 체리가 수없이 매달려 있음은 큰 기쁨이다. 나무 한 그루에 이 많은 체리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 붉게 익어가는 모습은 자연이 선물해 주는 여름의 경이가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인 나이도 잊고 이렇게 체리를 좋아하는 것은 이 작은 나무가 처음으로 많은 체리를 매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봄 같은 시기에 꽃이 만발했던 살구나무에는 한 알의 살구도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푸릇푸릇하던 열매가 며칠만에 붉게 물들어 탐스럽고 윤나는 빨간색으로 변한 체리를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온다. 나무에서 익은 것을 골라 몇 알을 먹어보니 방금 딴 것이라 신선하고 알도 단단하지만 당도가 꽤 높았다. 먹음직스럽고 싱싱한 빨간 체리 맛은 그만이었다. 상큼하고 은근하며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다. 아마도 순수와 밝음에서 풍겨오는 향기일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 슈퍼마켓에 가보면 수많은 종류의 여름 제철과일들을 볼 수 있지만 체리처럼 첫눈에 들어오는 싱싱한 과일도 드물 것이다. 여인의 붉은 입술처럼 체리의 빨간 빛깔과 향기는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고 은은하다고 할까.
과일계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체리는 우리 몸의 간 기능과 다이어트에 좋고, 황산화작용으로 노화방지 및 칼륨이 풍부하여 콜레스테롤과 혈압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혈관질환에 예방효과도 있으며,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빈혈있는 사람에게 좋다고 하니 먹는 과일로만 그치지 않고 만병통치약인 모양이다.
체리의 단맛을 알았는지 아니면 새들의 몸에도 좋고 이로운지 며칠 전부터 새들이 하나 둘 몰려오더니 이제는 떼로 몰려와 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빨갛게 익은 것만 골라 먹으니 내 차례는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어릴 적 논밭에 벼가 익을 무렵이면 먹이를 찾아 새떼가 몰려오는데 벼를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새들과 싸운 기억이 나 몇차례 시도해 보았는데, 노인을 얕보고 조롱하듯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새들을 감당할 수 없다.
주먹보다 적은 새들과 먹을 것을 가지고 그것도 다름 아닌 체리를 가지고 싸우려고 하니 한편으로 치사하고 인간의 자존심이 상해 그만 나누어 먹기로 했다. 아니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라 구경만 하고 기권하기로 했다. 지금 새들은 체리나무를 심고 열심히 돌보아온 주인은 무시하고 그들끼리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놈들 두고 보자 내년에 살구나무에 살구가 달리면 그것은 분명히 나의 차례일 것이다.
여름, 장렬한 태양이 온 땅을 내리쬐며 푸름이 짙어지는 계절, 농군들의 땀으로 무르익어가는 알곡으로 한여름의 열정이 발산된다. 태양의 장렬함은 어느새 곡식을 고개 숙이게 하며, 나무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한다. 오늘도 과일가게에 먹음직스럽게 쌓여 있는 빨간 체리를 보면 새들이 침입하기 전 우리집 뒤뜰의 체리나무가 화폭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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