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5월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절기는 입하로 시작한다. 옛날 중국에서 일 년을 통한 태양의 움직임을 24등분하여 약 15일마다 구별한 24절기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선조들이 절기를 중시한 것은 농사의 시기를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입하는 24절기중 하나로 일곱 번째,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절기로, 양력으로 5월 5일경에 든다. “입하는 한여름이니 비 온 끝에 볕이 나서 날씨가 좋다”고 하였다.
대륙에 따라 계절의 오는 속도는 차이가 있겠으나 이때가 되면 봄은 완전히 퇴색하고 산과 들에는 신록이 일기 시작하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또 마당에는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하고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기부터 들판의 풀잎이나 나뭇잎이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푸르름이 온통 산과 들을 뒤덮는다. 잎새마다 윤기가 흐르고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낸다.
토론토에는 여름을 알리는 절기 입하가 온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진정한 봄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이다. 오늘도 꽃샘추위를 동반한 봄비가 시나브로 내리고 있다. 다행히 신록의 봄은 왔으나 변덕스런 기온으로 봄의 전령사인 로빈은 보이지 않고 겨우내 잠들었던 자연이 기지개를 켜고, 살며시 깨어나는 눈빛으로 초록은 피어나기 시작한다. 잔디밭에는 이미 민들레가 노랗게 물들이고 있지만 곧 화려하게 치장한 화단의 크고 작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고 지고 또 피어날 것이다. 그것은 한 줌의 땅바닥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들이다.
집 뒤뜰의 포도 넝쿨에는 아직 새순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체리나무와 살구나무에는 어느 꽃보다 먼저 뭉게구름처럼 흰꽃을 활짝 피웠다. 살구꽃은 지난해에도 몇 송이 피었지만 살구 구경은 못했고 금년에는 눈부시게 피어나 이렇게 활짝 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금년 여름에는 유년시절 고향에서 즐겨 먹던 살구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텃밭에는 지난겨울 일찍 내린 눈으로 인해, 마늘이 얼지 않게 짚으로 덮어주지 않았는데도 언 땅을 뚫고 돋아난 새싹들과 부추, 마늘이 제법 초록 빛깔로 힘찬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흔들리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도 초록은 변함없이 돋아나고 무성해진다. 녹색은 생명의 빛깔이라고 한다. 겨우내 빛을 잃고 움츠렸던 생명이 파랗게 되살아나는 색이 아닌가. 움트는 잎새의 여린 숨결이 가만가만 기어 나와 파릇파릇 튀어 나오는 것이 연록색이라면, 기승을 부리며 거칠어지는 것이 여름 숲의 짙어질 대로 짙은 녹색이 아니겠는가.
텃밭에 옮겨 심을 호박, 고추, 오이씨를 뿌려 모종을 만들고 있는데 이제 움이 올라오고 있다. 우리 딴에는 정성스럽게 물을 주고 낮에는 햇볕에 내어 놓고 밤이면 집안으로 옮겨 놓는다. 5월 하순경에는 옮겨 심어야 하는데 사람의 욕심대로 빨리 커줄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텃밭이래야 집 뒤에 있는 한 뼘의 땅에 불과한데 아내는 벌써부터 부엽토 흙을 열 포대나 사와 상추와 쑥갓 씨를 뿌리고 토마토 받침대를 사오는 등 밭농사 준비에 바쁘다. 단 두 사람만이 사는 집인데 돈만으로 치면 불합리한 행동이다.
최근에는 건강과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은 텃밭에서 채소 재배도 크게 늘었다. 서툰 농사꾼이 과연 얼마나 깨끗한 채소를 키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신선도만큼은 발군이다.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건강한 삶의 의지를 다지는 것만도 현대인에게는 보약과 같다.
집에서 걸어서 조금만 나가보면 어디에나 녹색이다. 봄의 전령들이 지고 짙푸른 신록을 기다리는 이 아름답고 짧은 시간의 간극에 산과 들에는 보랏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것은 가는 봄과 오는 여름 사이에서 우리의 기다림을 자극한다.
지난겨울을 견디어낸 산천이 베푸는 향연인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 속에서 생명수를 길어 올려, 하늘에 닿을 듯 꼭대기의 가지에까지 움을 틔워 녹색 물결을 이룬다. 연록의 새순이 초록으로 짙어지고 녹색의 바다는 점점 깊어져 간다. 그 속에 내 마음을 담가 깨끗이 하고 싶다. 영혼까지 정화시켜 줄 것만 같다.
지난밤에 내린 봄비는 생명을 촉진시켜 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신록을 새삼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봄은 언제나 이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다. 초록이 풍성한 계절, 그 강한 생명력을 배우기 위해 푸른 그늘로 가야겠다. 내 마음 가는대로 내 눈길이 멈추는 그 곳에서 온 천하가 보랏빛으로 물드는 향기에 취해보고 싶다.
금년 초에는 잦은 봄비로 집 앞뒤 잔디가 푸르게 자랐다. 지난 주말에는 올봄 처음으로 잔디를 깎았다. 발걸음마다 부드럽게 스러지는 풀밭의 감촉과 바람에 실려오는 풀향기가 그토록 좋았다. 순수하게 살기 위해 이 녹색의 계절에 펼쳐지는 초록 물결에 내 마음을 담그고 싶다. (20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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