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매일같이 뜨고 진다. 이렇게 지구는 잠시도 발길을 멈추지 않고 돌고 또 돌아간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현상이다. 그 사이에 사람은 나고, 사람은 죽어 간다. 우리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끈기와 투쟁으로서는 지배할 수 없는 유일의 인생사를 태어남과 죽음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그 한 생애란 우주의 무한대에 비하면 눈 깜박하는 사이밖에 못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세월이 흐른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물의 흐름에 비유해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늙어간다는 뜻일 게다.
깊은 밤에 아득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삶과 영원과 사랑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서 추연한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세월, 화살처럼 날아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그냥 덤덤히 외면할 수만은 없는 나이에 살고 있다. 살아오면서 누구보다 건강한 치아를 가졌다고 늘 자부하던 것인데 20여년 전 아랫 이빨 하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치아는 바로 건강의 척도라고 말한다. 치아가 건강할 때 우리는 건강하며 치아의 쇠퇴와 더불어 우리 몸도 쇠퇴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당시 치과대학 졸업반이었던 작은 아들에 의하면 치아 숫자는 위-아래턱 각각 16개씩 모두 32개가 기본이란다. 어금니는 잘 쓸 경우 100년 안팎이라는 세월 동안 제 기능을 할 수 있으니 절구 중에서도 매우 잘 만들어진 절구인 셈이다. 실제로 부단한 사용에도 불구하고 내구력이 어금니만큼 좋은 인체 부위도 찾기 힘들다. 충치는 철저한 양치질로 보완할 수 있다. 치아는 인체에서 뼈보다 훨씬 강도가 높고 가장 단단한 조직인 탓에 사람이 죽은 뒤에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문제의 이빨은 충치였으나 작은 아들이 수없이 갈고 다듬기를 반복해서 치관(Crown)을 손수 만들어 평생 동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약 10년 쯤 되었을까, 어느 날부터 책과 신문의 글이 아물거려 검안의인 둘째 며느리 사무실을 찾았더니 눈은 정상인데 노안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즉 시아버지는 좋은 눈을 가졌는데 정상적으로 늙어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며 돋보기안경(도수가 들어 있는 안경)을 하나 맞추어 주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후인 지난 2014년 1월 오른 쪽 눈의 백내장(안구의 수정체가 부옇게 흐려지는 눈병) 수술을 받았다. 발달한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았으나 원래의 나의 시력에 미치지 못한다. 수술 후 일정기간 동안 양쪽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아 차고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에 벽을 들이받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월에 장사 없다“라는 옛 선인들의 말대로 올 것이 온 것이다. 겉으로 아무리 버둥대도 몸 구석구석이 서서히 폐품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빨에서 눈으로 구체적으로 또 늙어 감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몸과 마음은 아직 정상으로 늠름한 체 과장을 하며 살고 있는데 몸의 곳곳에 노쇠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밥 속에 섞인 돌도 겁 없이 삼키고 맨발로 겨울 거리를 걸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던 젊음이 내게도 있었다. 지금까지 10년을 주기로 몸에 이상이 하나씩 일어나니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이 어느 신체 구조에 신호가 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도 10년이 아닌 더 짧은 시기일지 모르는 일이다. 늙는다는 것은 인생의 축적된 가치 때문에 참으로 숭고한 것이며 병든다는 것은 병들지 않았던 삶에 대한 회고를 가능케 한다는 가치 때문에 아름다운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건강한 눈, 건강한 치아, 건강한 귀, 건강한 신체 그리고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노후 생활이라는 것을 재확인 하는 나이에 살고 있다.
사람이란 참으로 미묘한 존재다. 세상에는 신비로운 일이 많은데, 사람 몸의 기묘한 구조와 기능에 탄복한다. 과학의 힘이 빚어낸 그 어느 고성능 기계보다 월등히 정교하고 성능이 뛰어난 정밀기계임을 우리는 흔히 의식 못하고 살고 있다. 사람의 신체 구조는 마치 시설이 완비된 정밀 공장처럼 각 부분이 기묘하게 연결되어,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전체를 위해 필요 불가결의 요소가 되고 있음을 본다.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가 이럴 진데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가 서로의 균형의 힘을 잃는다면 그 중심은 어쩔 수 없이 흔들리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한국 평창에서 온 황창연 신부님의 강론이 생각난다. 농사 체험을 통해서 산과 물 그리고 땅의 신비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황 신부님은 사목생활을 하면서 환경공학을 전공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올바른 환경조성, 무공해 세상 건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황 신부님에 의하면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여성 상위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집안에 딸 둘 아들 하나면 금 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은 메달, 아들 둘이면 목 메(매)달 감이라고 했다. 나는 아들 둘뿐이니 분명 목 메(매)달 감에 속하지만 아들 녀석이 고장난 이빨을 고쳐주고,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늙어가는 눈을 보살펴 주니 아직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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