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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미각

 

 

 고향을 떠나 살다보면 옛정이 그리워지고 마음속에 옛날들이 환영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고향을 향해 몸부림 같은 글을 쓰게도 한다. 나의 이 작은 몸부림이 메아리 없는 소리로 그친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고향에 대한 애정의 뿌리를 더 깊게 하려는 마음의 동기이고 잊혀지지 않는 나의 고향사랑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나는 유년시절을 살구꽃과 안개와 보리와 잉어와 철쭉이 어김없이 사계절 따라 찾아오는 작은 시골농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그 자연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고 크기 때문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있다. 유년시절의 고향에는 봄부터 여름까지는 뻐꾸기가 울며 가을에는 5곡이 무르익고 들국화가 한창이며 겨울은 길고 추웠다. 남쪽이라 눈은 많이 내리지 않았지만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서웠다.


 친구들과 그 추운 눈 내리는 밤, 늦게까지 놀다 돌아와 별미로 특별히 먹을 것이 없었던 그 긴 겨울밤에 먹던 김치말이 밤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겨울 입이 쩍쩍 얼어붙는 것같이 싱싱한 동치미 국물에 국수나 찬밥을 말아 먹던 김치말이 맛을 무엇에다 비길까. 김치라야 추운 겨울동안 얼지않게 땅속에 김치독을 묻어둔 통무와 통배추를 소금국에 담근 별것 아닌 국물김치건만 그렇게 입 안이 찡하도록 시원하고 청정한 미각을 어디서도 찾을 길이 없다. 그건 그대로 어린시절 고향의 자연 맛이라고 할밖에 없다. 자연 그대로의 미각도 내 기억 속에 싱싱하게 살아있다. 


 그나마 단편적인 삽화 같은 고향에 대한 기억도 1965년 봄을 마지막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입춘이 지난 오늘도 오래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내리고 있다. 강추위 속에서 자디잔 눈발이 마치 이슬비 오듯 내리고 있다. 지난해에 처음으로 뒤뜰 텃밭에 김장 무우와 배추씨를 뿌렸다. 배추는 벌레들이 많아 실패작이었으나 무우는 주위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을 만큼 실하게 자랐다. 


 김치와 된장, 고추장은 우리 한인들의 식탁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음식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집안사람은 가깝게 지내는 친구로부터 배운 솜씨로 된장과 고추장을 한번 담가 먹었는데 첫 번째 솜씨치고는 제법 맛있고 일품이었다. 주위 친구들과 나누어 먹기도 하고 칭찬도 받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근년에는 된장, 고추장을 담는 일은 없어졌다. 그런데 금년에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그 귀하고 비싼 김칫독(옹기그릇)을 구해와 며칠이나 걸려서 무우를 뽑고 다듬고 절이고 해서 제법 김장무우 김치를 흉내 내어 담갔다. 옛날 고향의 어른들이 하던 것을 기억하고 뒤뜰 땅에 얼지 않게 김칫독을 묻어야 된단다. 김칫독이라야 조그만 두개의 장난감 같은 옹기단지라 땅에 묻는 번거로움보다 우리집 지하실이 넓고 공간이 많아 그대로 지하실에 두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식품점에서 쉽고도 편하게 맛있는 김치를 한 병씩 구입해서 먹었는데 한 병이면 보통 한 달은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집에서 담근 김치는 그 값이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 모르긴 해도 3배는 들어갔을 것이다. 그럼 그 김치 맛은 어떤가. 역시 옛날 고향의 추운 겨울밤에 먹던 어머님이 만든 그 기막힌 맛은 아니다. 조금 속된말로 표현한다면 택도 없다. 정성들여 만들고 얼지 않게 땅에 묻는 옛 어른들의 지혜가 모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 맛을 이야기 했으니 집에서 무우김치 담그는 일이 계속될지 두고 보아야 될 것 같다.


 요즈음은 식탁에 김치가 없는 날이 없고 건강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기도 하지만 캐나다에 처음 이민 와서 실험실에서 근무했을 때, 직장동료들이 코를 틀어막고 김치 마늘 냄새 때문에 천대받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이 집에 오면 할배할매가 좋아하는 김치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김치 맛을 모르고 자라고 있다.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우리 집 밥상에는 고유의 된장, 고추장과 김치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옛날 그 긴긴 밤에 먹던 통무우 김치 맛이 그립다.


 고향이란 말만 들어도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 외로울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처지, 아니면 자신의 환경이 이른바 고향상실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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