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 그 늘어만 가는 빚을 언제, 어떻게, 갚을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카드를 쓰면서 단순히 물건 구입을 위해서 썼는지 생활비가 부족해서 썼는지, 등등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따금 신문에도 보도가 되곤 하는 가계대출로 인한 빚이 늘어가며, 남편이 직장을 잃게 되면서 생활비로 카드를 쓰게 되었다는 얘기나 카드 사용으로 인한 신용 불량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며 편치 않은 마음이 되곤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일단 생활수준, 형편을 올려놓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그대로 유지를 하려거나, 나도 모르게 예전의 씀씀이 그대로 하며 그 씀씀이가 줄어들지 않아 꼭 현금이 있어야 쓸 수 있었던 때와는 그 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나야말로 지금도 그 씀씀이를 줄이지 못해 꼭 사고 싶은 물건, 갖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엔 주저하는 마음이 없지도 않지만, 일단은 사고 본다. 그렇긴 해도 충동구매를 하거나, 낭비가 심한 편은 아니기에 그것은 어찌 보면 카드의 남용일 수도 있겠으나 카드를 활용함도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카드를 갖게 되면 필요 없이 돈을 쓰게 되어 낭비를 하거나 빚이 늘어난다면서 아예 카드조차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같은 경우 남의 빚은 물론이요, 자기의 분수, 형편, 수입 한도 내에서 지출을 하게 되니 살림하면서 무리는 하지 않게 되긴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도 경제를 제대로 꾸려 간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즈음 같이 신용카드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면서 신용카드 하나 둘쯤 없대서야 본인의 수입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사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은행을 찾아갔단다. 그 사람은 그 동안 카드는 물론이요, 은행에서 돈 한 번 빌려 보지 않았기에 나 정도라면 은행에서 어느 만큼의 돈은 빌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음은 커다란 착각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그 사람이 돈을 빌린 적도 없기에 그 사람의 신용 정도를 알 수 없어 은행에서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신용카드’ 말 그대로 상대를 믿고 돈을 빌려 주는 증서가 되는 것이다. 물건을 구입하면서 당장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고 한 달 후에, 필요하면 분할로도 가능하니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 경제력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니 그만큼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서로 상부상조 한다’는 얘기가 여기에도 부합된다. 빌려 주는 쪽에서는 상대를 확실하게 믿을 수 있으니 의심하지 않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이요, 쓰는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 할 때 구차하게 남에게 애기를 하지 않아도 얼마간의 이자만 내면 되니 이처럼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는 신용 카드를 활용하면서 살았다면, 이민 사회에 와서는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한 번 할 수 없던 이곳에서 필요 할 때 얼마나 요긴하게 잘 쓰고 있는지 모른다. 요긴하게 잘 쓰는 것을 넘어서서 카드가 없었다면 쓰지 않아도 되는 ‘카드빚’을 지고 있음도 시인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은행엘 갔다. 그런 일은 별로 없는데 창구에 있던 딸아이 또래의 필리핀에서 온 은행원 직원과 몇 마디 말이 오고 갔다. 나보고 한국엘 언제 다녀왔느냐고 묻기에 그 동안은 3,4년에 한 번은 나가게 되었으며, 이번에도 책 2권을 내기 위해 한국엘 가야 한다고 얘기를 했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그녀가 고객용 방으로 가자고 해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무슨 용지를 꺼내더니 나보고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니 싸인을 하라고 하기에 나중에 딸과 같이 와서 하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으며 더 좋은 것이니 지금 당장 싸인을 하라는 것이다. 난 그 싸인을 하라는 그 용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잘못될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집에 가서 딸아이에게 물어 봐서 아니다 싶으면 취소를 해도 되겠지 생각을 하며 그 자리에서 싸인을 하라는 곳에 싸인을 하고 돌아 왔다.
그 즈음 난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었는데 내 통장을 보며 나와 얘기를 하는 짧은 순간 나를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은행에 다녀 온 지 얼마 지나서 은행에서 무슨 체크가 오긴 했지만 잊고 있었다. 그 이후 은행을 갔어도 그 여직원은 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서 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기에 그 은행엔 다시 갈 수가 없었다. 그런 이후 1년도 넘은 어느 날 큰 딸아이가 방 정리를 하다가 그때 우편으로 온 체크를 들고 와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딸과 얘기를 하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라인 어브 크레딧이란 체크로 카드보다 쓸 수 있는 한도액도 더 많았으며, 이자율도 낮았기에 그 동안 써왔던 비자 카드에 남아 있던 금액을 그 체크로 해서 갚고 보니 이자가 우선 좀 줄었다.
영어를 잘 알아듣지를 못했음에도 같은 이방인이기에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는 나를 그녀가 조금은 도울 수 있겠다 싶었는지 나중에 딸과 같이 오겠다는 내 얘기는 뒤로 한 채, 내가 먼저 묻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금방 해 줘서 그 즈음 그 체크를 얼마나 요긴하게 잘 쓰고 있었는지 이름도 모르는 그녀가 그저 고맙기만 하다.
같은 약이라도 잘 쓰면 보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도 있듯 신용카드 또한 잘 쓰면 많은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절제하지 않고 함부로 쓰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신용 불량자가 되기도 할 터이니 꼭 써야 할 곳, 절제를 해야 함이 참으로 절실하다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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