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그는 포도즙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다. 대체로 밀을 타작할 때는 넓은 마당에서 소나 말 같은 동물을 이용하여 하는 법인데 기드온이 막대기를 사용하여 포도즙 틀에서 밀 이삭을 타작한 것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에 띠이면 타작한 밀을 빼앗기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 당신 미디안의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말해줌과 동시에 기드온은 그들에게 거역하거나 싸운다는 용기를 못 내는 나약한 인물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자기 소유의 밀을 숨어서 타작하는 기드온을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는 “큰 용사여,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 말한다. 하나님은 미약하고 겁 많은 기도온을 “큰 용사”로 사용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다.
그 말씀을 들은 기도온은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면 어째서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에게 억울함을 당하며 지내도록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하나님의 선민이 이방족속들에게 고초를 당하는 까닭이 그들이 범하는 죄악 때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내가 너를 보내노니 너는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삿 6:14)고 말한다. 기드온이 “제가 무슨 힘이 있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겠습니까?”라 답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폭정에서 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을 때 모세가 “제가 어떻게 막강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라 대답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치듯이 쉽게 물리칠 수 있게 해주실 것이라 말해준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는 것처럼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없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우리를 대적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쟁취한 승리는 그들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힘과 용기와 능력을 주셨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란 말을 들은 기드온은 그가 하나님의 천사임을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한다. 꾸중을 들어 마땅한 무례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가 원하는 표적을 보여주신다.
기드온이 제물로 가져온 염소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바위 위에 올려놓게 한 후 천사의 손에 든 지팡이를 갖다 대자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빵을 살라버린 것이다. 그것을 본 기드온은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된다.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20:19; 33:20)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삿 6:23)고 말씀하심으로 그에게 평안한 마음을 허락해 주신다.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고통 당하는 그의 백성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해내라는 임무를 주셨고, 의심 많고 미약한 그가 자신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도록 만드신 것이다.
나약하고 겁 많은 기드온은 하나님을 만나 그의 권능을 확인하는 체험을 한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억압에서 건져내는 사사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기드온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와 만나 사명을 받은 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 살롬”이라 이름 함으로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임명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평범한 서민에서 사사가 된 기드온의 변화를 보며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체험적인 신앙의 중요성이다. 체험적인 신양은 들음으로 형성된 믿음이 행하는 믿음으로 연결되는 교량 역할을 한다.
다른 하나는 평범했던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사가 된 것 같은 변화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모든 이들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후 5:17)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주신 첫 번째 사명은 바알 제단을 헐어버리고 아세라 상을 찍어내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기드온은 집안 종 열 명을 데리고 바알의 단을 부수고, 아세라 상을 찍은 후 새로운 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이튿날 아침,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를 찾아가 기드온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신 상을 때려 부순 동족을 처형하겠다고 나서는 기막힌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때 바알의 단을 관리하던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바알이 참된 신이라면 파괴당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성난 사람들을 달랜다.
기드온을 위한 요아스의 이 같은 변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성경에 나타난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기드온은 요아스의 현명한 변론으로 목숨을 보존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바알을 대적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닌 “여룹바알”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기드온의 공식적인 우상의 대적자가 되고,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구원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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