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필자는 2주간의 여행 중 일정이 너무 빡빡했지만 그래도 지금 아니면 전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난 수십년 동안 가보지 못했던 필자의 고향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 충북 진천 덕산과 필자가 다니던 청주의 국민학교까지 방문을 하게 되었다.
60년을 잊고 산 그 옛날 필자의 조상들이 살았던 시골 산골짜기 고향을 물어물어 어렵게 찾아간 필자는 막상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버린 그 옛날 집 앞에 서니 갑자기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굳어지고 한참동안이나 멍해져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던 그 대궐같이 커보이던 대청과 집들은 또 그토록 넓고 넓던 앞마당은 왜 그리도 작게 졸아붙어 버렸는지, 마당 가운데 자리했던 그토록 깊고 깊던 우물은 아직도 있지만 지금은 그 크기가 마치 조그만 옹달샘처럼 보였던 모습이 필자를 지금까지도 멍하게 만들며, 갑자기 또 어이없이 밀려드는 슬픔과 가슴이 무너지는 그리움은 이내 그때도 혼자였고 또 지금도 혼자라는 자지러지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땐 볼수록 정겹고 헤어지면 또 보고 싶었던 우리 모두가 젊은 청춘들이었는데, 이제 그들은 모두 어딜 가고 아니 그들은 원래부터 없었는지 이젠 이렇게 텅 비고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이제 더 이상 초가집이 아닌 초가집들이 낯선듯이 날 바라보고 있다.
새벽이면 쇠죽을 기다리며 큰 두 눈을 멀뚱거리던 그 누렁이가 살던, 지금은 텅 비어버린 외양간은 마치 지금이라도 누렁이가 대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위채와 아래채 사이에 잡초가 무성한 숲속에선 마치 어딜 갔다 이제 돌아왔냐고 소리치며 그때 그 시절의 사촌들, 또 그렇게도 보고 싶던 친구들이 뛰어나올 것만 같아 마치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심정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며 혹시나 숲속을 헤치며 뛰어 들어가 보았지만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견디며 우리의 냉장고 역할을 해줬던 그때의 즐비했던 장독대들만 나를 바라보며 히죽거린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 버린 나의 고향집이지만 그 옛날 돌아가신 큰 아버님의 육순 잔치가 기억나는데 온갖 친척들을 포함해 동네사람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손님들이 다녀가고, 필자 역시 많은 사촌들 그리고 함께 갔던 친구들이 다 어디서 자고 먹었는지 지금에 와보니 이해가 안 된다.
미꾸라지를 잡는다며 여기저기 파놓았던 그 논두렁이들, 온종일 붕어와 송사리를 쫒으며 빨래하던 아줌마들을 괴롭혔던 그때 그 시냇물, 메뚜기를 잡는다며 남의 논 속을 헤치다 논 주인에게 쫒기며 도망치던 그 푸르고 넓었던 논, 왕 잠자리를 잡는다며 잠자리채를 치켜들고 남의 밭 농작물을 망가트리다 밭주인에게 경을 치던 그때의 사람들은 모두가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은 나 혼자란 말인가.
참으로 우리 인간들을 착각 속에서 살게 창조해놓으신 조물주가 야속하기만 하다. 이젠 다시 올 일도, 또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을 고향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사라졌다 해도 그때의 시냇물, 논, 밭, 방죽까지 모두가 사라지고 그곳에는 현대식 건물들과 도로가 이젠 더 이상 고향이 아닌 시골의 풍경을 대신하고 있으니, 언젠가 폐허가 되어버릴 본가 집채들도 곧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는 생각이 역시 우리 인간들에겐 아무것도 영원한 것이 없는 그저 약하기만한 피조물이란 생각을 하면서 쓸쓸한 마음으로 서울로 향하였다.
아무것도 우리 인간들에게는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고 또 사라지고 지나가면 그만인 것을 왜 그리도 모든 것들이 간절했고 순간순간들이 아쉬웠던 것일까? 과거도 현재도 또 미래도 모두가 미리 정해진 프레임 속의 인생인데 말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내가 살고 있는 곳 캐나다로 돌아오면서 과연 내가 이 나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자신이 서질 않는 이유는 바로 갑자기 바뀔 환경에 대한 겁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인데도 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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