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설마’의 역사 500년(20)-왜정 36년, 일본의 착취
samkang39

 

 

1910 – 1945, 왜정 36년 동안 일본은 우리 조선에서 많은 물자와 인력을 수탈 착취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정신대, 대동아전쟁 징병, 보국대 등 필요에 따라 이용하였고, 때로는 인간생체실험 등 우리의 생명을 실험 자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설마, 설마 하다가 반만년 사직을 빼앗긴 대가는 참으로 참혹하였다. 


1. 동양척식주식회사 - 조선의 경제독점과 토지 및 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일본제국이 설립한 국책회사이다. 이는 대영제국의 동인도회사를 본뜬 식민지 수탈기관으로 제정한 동양척식회사법에 근거하여 세워진 회사이다. 


을사보호조약에서 한일합병을 음모하던 1909년 1월부터 대한제국에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모든 소유권은 일본인에 한하며, 활동지역은 조선에서 만주까지 확대 되었고, 이후 일본군의 점령지에 따라 타이완, 사할린, 남양군도로 확장되었다. 


세부사업은 (1)농업 토지의 매매, 임차, 경영, 건물의 건설 및 매매, 대차 등이었는데 이는 일본 소작인들에게 한반도 이주를 유도하는 “동척농업이민계획”을 시행하여 조선 각지에 일본인 촌을 세워 나가는 일이었다. 


(2) 1916년부터는 일본의 식량부족을 메우기 위하여 조선에서 “추수공출제도”를 실시하여 조선에서 쌀과 보리 등 곡식을 수탈해 갔다. (3) 1930년부터는 금융사업을 확장하고 식산은행을 수립하여 금전적 착취의 분야를 넓혀갔다.   2. 조선여자근로정신대 - 이는 일제강점 말기에 조직된 태평양전쟁 지원조직이다. 원래 정신대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여러 분야의 전쟁 지원단체에 붙어 사용되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근로정신대”가 조직되어 전쟁수행을 위한 노역에 투입된 것이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미 특별한 법적 근거도 없이 실시되고 있던 조선의 여자근로정신대는 1943년 8월 23일에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되면서 합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었고 공식적으로 출범되었으나 실제로는 훨씬 그 전부터 실시되었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는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가 없는 조선 여성이 소속되었으며, 주로 군수공장 등에 투입되었다. 동원 방법은 (1)관청의 알선 (2)공개 모집 (3)자발적인 지원 (4)학교나 단체 등을 통한 다양한 방법이었지만, 취업이나 진학을 미끼로 여성을 유인한 후 노동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실로 강제노동이었다. 


이중 일부는 일본군 위안부로 발탁되어 전쟁이 진행되는 지역으로 보내져서, 군인들의 성적 만족을 채워주는 위안부로 강요되었다. 근로정신대의 명목으로 연행되어 간 조선 여인은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깨끗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 한일간의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세계의 인권단체들이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생존자들에게 다소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역사의 기록에서 은폐하려 하기 때문에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2011년 12월 14일 현재 전 세계의 인권 단체들은 이 문제를 놓고 1,000회 이상 시위를 벌였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으로는 양심적이고 예의가 바른 것 같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추잡한 역사를 소유한 민족임을 여기에서 다시금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3. 일제의 지원병제도와 징집제도 - 일본에 의한 특별지원병제도는 1938년 2월 2일 칙령 제95호로 공포되어 그 4월 3일부터 시행되었다. 응시자격은 17세 이상 신장160cm 이상 소학교 졸업자 이상으로 되어있다. 이 제도는 1944년 4월 20일까지 6년간 시행되었다. 


미나미 총독은 훈시대로 “시행의 목적은 한반도의 일본화, 즉 내선일체의 구현”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선의 청년과 학생들에게 황국 시민의 자각이라는 목표로 활용되었다. 하나 말만 자원이지 실은 지방관청의 경쟁적 모집을 통해 입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지원보다는 강제성 징집제도였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리하여 1944년 5월부터는 노골적인 할당제 징집으로 모집되었다. 대동아전쟁 말경 조선인 지원병의 숫자는 1942년 4,500명, 1943년 6,100명이었다. 하지만 1944년과 1945년의 통계는 전쟁 말기로 강제 징집의 숫자가 수만 명으로 추산되나 기록을 감추었다.


4. 징용, 근로보국대 - 일본은 제2차 대전 중 전쟁체제에서 인력확보를 위해 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하였다. 1938년의 국사총동원법과 1939년의 국민징용령을 제정하였다. 조선인들의 반발을 우려하여 지원형식을 취했지만 결국 모두가 강요로 이뤄졌다. 


마을 단위로 총동원연맹을 만들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조선의 농민들은 군대에서 사용할 벙커용 가마니 짜기, 탄피용 놋쇠 모집하기를 위하여 제기(祭器)를 다 탈취해 갔다. 이 연맹에 강제로 가입된 조선인은 약 458만 명이었으니 남자 세대주는 거의 다 포함되었다. 


 전쟁을 위한 노동자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은 사할린, 일본 탄광 등지에서 강제 노역을 하거나 군속으로 차출되어 일본이 침략한 동남아 지역의 기지건설과 철도공사에 동원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미국의 원자탄 두 방을 맞고 갑작스럽게 항복을 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 정착을 하다 보니 지금도 사할린과 일본 내에 우리 동포가 많이 살게 된 것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한국정부에 따르면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 동원 되었던 한국인 피해자는 103만 2,684명이라고 하였다. 


5. 창씨개명과 조선어 사용금지 - 1939년 11월 창씨개명법을 제정한 일제는 도청, 군청, 면사무소, 경찰서, 학교 등 공식 기구들과 친일 단체들을 총동원하여 이름을 일본식으로 창씨 개명할 것을 강요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케 하였다. 


이것은 조선의 넋을 빼앗아 민족 자체를 말살하기 위한 책동이었다. 창씨 개명을 하지 않으면 조선 아동은 학교에 입학할 수가 없으며 어른들에게는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이 정책에 반대하는 자는 비국민, 불온분자로 박해하고 징용과 보국대의 첫 번째 선발 대상이 되었다. 


 필자는 1945년 3월에 일본 소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한 두 달쯤 지나니까 선생님이 조선어사용금지 딱지를 30장씩 나누어 주었다. 학교 내에서는 일본말만 사용하여야 하는데 어쩌다 조선말을 하면 상대에게 그 조선말금지 딱지를 하나씩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 표를 다 빼앗긴 학생은 방과후에 변소청소를 하거나 벌을 받아야 했던 일이 생각난다. 


 이상에서 열거한 이외에도 우리 민족이 36년간 일본의 박해를 받은 것은 부지기수이다. 이 시대에는 친일을 아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나라가 없어졌고, 모든 통치와 법률이 조선인들을 옭아매고 있는데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자기들의 잣대로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고 함부로 조상을 욕되게 함은, 우리 문화와 전통적 정의로 보아 별로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실은 감정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불가분의 다른 면이 있고, 이분법적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깊이 사려해야 할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죄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고통과 아픔이었고 죽음이었다. 이제야 우리가 조상들의 무능을 탓하고 논공행상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조상들이 생각한 설마 설마의 역사가 그러한 대가였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면, 그것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가치는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조상을 비난만 했지, 자신들의 평가가 착각이거나 과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 

 

 

▲동양척식주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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