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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kang39
‘설마’의 역사 500년(15)-을사보호조약 , 고종의 하야(하)
samkang39

 
 

(지난 호에 이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


 지난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여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전문)

 

 헤에그 만국평화회의와 고종의 하야


 을사보호조약을 1905년에 맸었으니 이제 고종황제는 일본정부의 손바닥에 들어 있는 공깃돌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국권을 행사함에 일본의 수렴청정을 받아야 하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조약이 체결되자 고종은 이 조약의 체결을 무효화하기 위하여 1905년 11월 미국공사로 있던 헐버트씨에게 밀서를 보냈다. 하나 그 당시에 미국과 일본은 필리핀과 조선을 각각 하나씩 차지하기로 언약이 되어 있는 우방국이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고종은 헐버트에게 호소문을 보낸 것이다. 오히려 엉뚱한 짓을 한 것이 일본정부에 들통이 났을 뿐이다.


1907년 6월, 네델란드 헤에그에서 세계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있었다. 비록 외교권을 일본이 설치한 통감부에 빼앗겼지만, 고종은 대한제국의 억울한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하여 이 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할 계획을 세웠다. 특사로 내정된 사람은 이상설과 이위종, 그리고 이준이었다. 


이들을 비밀리에 특사로 파견하면서, 고종은 다른 한 편으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친서를 보내 이들의 특사활동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 특사들이 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하였지만, 영국과 일본의 방해로 고종의 밀사사건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수포로 돌아갔다. 


 이 일의 실패에 격분하여 이준 열사는 현장에서 할복 자살을 하였다고 하였으나 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자살이 아니고 약 10여 일간 화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준 열사의 묘는 지금 네덜란드 헤이그에 우리의 사적지로 남아 있다. 


 이 만국평화회의 밀사 파견 사건의 책임을 물어,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 세력과, 일본정부의 강요에 의해 고종은 그 해 7월 20일에 황제의 자리에서 퇴위를 당했다. 곧바로 왕위를 왕자 척에게 물려주니 그가 27대 순종이다. 하나 모든 것이 강요에 의한 일이었기에 실제로 조선의 역사는 고종으로 끝이 난 것이고, 순종은 형식적으로 씌워진 임금이었을 뿐이다. 


일본은 순종을 일본으로 송치하여, 우리 조선 왕조가 마치 일본 왕조의 지파인 것처럼 역사를 조작하려 하였고, 방자여사와 결혼을 시켜 조선이 일본의 부마국인 것처럼 행세하게 하였다. 


 고종은 1919년 정월에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일제의 독약으로 세상을 하직했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지자 우리 민족은 일제히 격분하여 3.1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대한제국 고종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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