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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모임에 갔더니 웬 낯선 사람 하나가 불쑥 내 나이를 묻기에 나는 "50년 전에 스물 둘이었습니다."라고 공손하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내가 오늘 유머 감각이 넘치는 대답을 했구나."하며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50년 전 스물 둘'은 내가 한 말이 아니요 노산(鷺山) 이은상의 수필 <청춘 20년기>에서 훔친 말이다. 이 구절을 처음 봤을 때 퍽 재미있는 말이라 생각되어 마음속에 새겨두었다가 한 번 써먹은 것 뿐. 


 노산의 고백에 의하면 이 말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노산 자신이 아니라 조선 말엽의 대 시인(詩人) 자하(紫霞) 신위라 한다. 그러니 노산은 자하에서 훔치고 나는 노산에서 훔친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자하가 일흔세 살 때 서울에 사는 어떤 젊고, 영리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그의 서재에 와서 평생 가까이서 모시고 싶다는 청을 해왔다. 이를 부드러운 말로 거절한 자하는 그 여성이 돌아갈 때 시(詩) 한 편을 지어 주었다.

 


흰모시 적삼에 얼굴도 해맑으니/제 진정 하소하며 제비마냥 종알대며/내 나이 몇 살이냐 묻지 말아라/오십 년 전에 스물 세 살이더이다(澹掃蛾眉白苧衫 . 五十年前二十三)

 


 3, 4년 전 어느 봄, 동창회 모임이었지 싶다. 공학도 S형이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내가 벌써 일흔 둘이요, 일흔 둘. "하고 일흔 둘을 누가 강제로 그에게 덮어 씌었는가, 자기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던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게 생각난다. 그게 바로 S형의 통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 3년이 지나서 내 나이 70에 들어서고 난 후였다. 70대와 60대가 이렇게 다른 것이다.


 나이가 일흔 둘이란 말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사군자(四君子)나 서예 작품 같은데 노필(老筆)로 70수(?)니 80도인(道人), 90노옹(老翁) 같은 낙관을 보면 스페인의 첼리스트 카잘스(P. Casals, 1876~1973) 같은 연로한 예술가의 연주를 듣는 것 같이 작품 전체에 노련미랄까 원숙미가 넘치고 중후한 향기를 내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나도 작품에 늙었다는 티를 내서 낙관(落款)에 도인이니 노옹이니 하는 말을 써 볼까 했으나 너무 젊다 싶어 그런 말 대신 처사(處士)니 산인(散人)이니 하는 말만 쓰고 있다. 


 가끔 사람들이 모인데서 "80 가까운 나이에. " 하고 내가 무슨 80고령이나 된 것처럼 허세를 부릴 때가 있는 것을 보면 나도 70을 넘어섰다고 그다지 원통해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내가 일흔 살이 되던 해에 '70!'이라는 수필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며칠 전 그 글을 다시 읽어보니 "아, 슬프다. 내가 벌써 70이 되었구나." 하는 탄식보다는 바다낚시에 걸린 물고기가 한동안 이리저리 버둥대다가 기운이 다하면 조용히 끌려오는 것처럼 아직은 의기양양하고 젊음의 오기가 제법 남아 있어 보였다. 아무튼 이제 일흔 둘이 되었으니 저 당나라 시성(詩聖) 두보의 <곡강(曲江)> 제4구에 나오는 '인생에 칠십은 옛날에도 드물었네'(人生七十古來稀)의 고희도 넘었으니 살만큼 살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70살을 살건 80, 90, 100을 살건 무슨 상관이랴, 인생이 허무하기는 매한가지인데.


 영조 때 태어나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을 거치면서 83세의 장수를 누렸던 산운(山雲)  이양연은 자기 스스로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詩)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한평생 시름 속을 살아오느라/밝은 달은 봐도 봐도 미나쁘더니/이젠 길이 길이 대할 것이매/무덤 가는 이 길도 해롭지 않으니. (人生愁中過 . 此行未爲惡)


 산운(山雲)은 그의 자호 '산구름'처럼 평생을 정처없이 떠돌며 가난과 외로움, 슬픔과 눈물로 방황했다. 이런 인생에서 달은 언제나 그의 외로운 벗이었던 것이다.


 '50년 전 22살' 때의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무전여행을 한답시고 강원도 정선 어느 산골짜기를 헤매고 있었지 싶다. 조선 명종 때 천문학과 의학에 밝았던 선비 북창(北窓) 정렴(鄭?)은 44세를 채 못 채우고 죽으며 스스로 원망하며 남긴 시구에 "선생의 목숨이 왜 이리 오래뇨(先生之壽 何其長也)"라 탄식했다는데 나도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싶은데 무슨 말을 남겨야 하나?


 자하(紫霞)에서 시작한 '50년 전 23'이 노산(鷺山)을 거쳐 도천(陶泉)에 이르러 '50년 전 22'이 되었으니 분명 시대를 거스른 행동이다. 앞으로 100년, 200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시인들은 자하, 노산, 혹은 나를 본받아 '50년 전 30'으로, 또 한참 가다보면 '50년 전 50, 60, . 100, 200'이 나오고 마침내 기저선[baseline]이 오르게 되면 '100년 전에 몇 살'이 될 것이다. 아, 어지럽다. (201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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