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열아홉 살이었으니까요.” 보도니가 말했다.
“러시아 사람들이 너그럽게 생각하고 잊어버린 일들을 다시 끄집어 내서 무얼 하시겠습니까?”
그는 다시금 차가운 음성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빼뽀네는 주정꾼이며 질서 파괴범으로 옥에 갇혔을 때 그 수염을 길렀다네. 물론 그의 진짜 죄목은 반파시스트를 선동한 것이었소. 결국 그것이 그에겐 잘된 일이 되었소. 전쟁이 끝난 다음 그는 정치범의 명분과 순교자의 지위를 얻었으니까 말일세. 그렇게 해서 이 사람은 우리 마을의 첫 번째 읍장이 되었고, 상원의원까지 된 것이라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아저씨는 턱수염이 없었지요.”
“없었지.”
“그게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보도니는 돈 까밀로를 바라보았다.
“낯선 얼굴이 아닌데요. 같은 고향 출신이신가요?”
“아닐세, 아니야”
빼뽀네가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이 분은 같은 고향에 살긴 하네만, 다른 지방 출신일세. 자네는 이 사람을 알 수가 없다네. 그런데 자낸 어떻게 해서 예까지 오게 되었나?”
보도니는 어깨를 풀썩 해 보였다.
“여러분께서 콜호즈에 관해 좀 더 설명해 주기를 원하신다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만.”
그러나 돈 까밀로는 그것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었다.
“여보게, 이 사람이 공산당 상원의원이라는 사실 때문에 방해가 되진 않도록 합시다. 우린 정치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젊은이는 인간 대 인간으로 우리와 이야기할 수 있어요.”
보도니는 빼뽀네와 돈 까밀로의 눈을 번갈아 가며 쳐다 보았다. “저는 숨길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주장하듯이 말했다.
“이 그레비네크 마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제 이야기를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그 일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한 나도 그 일을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군요.”
돈 까밀로가 이태리 담뱃갑을 내놓았다.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빗방울이 창가를 때리며 지나갔다. “17년 동안 저는 그런 담배가 그리웠습니다.”
보도니가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며 말했다. “신문지에 말아 피우는 마코르카는 도저히 못 피우겠어요. 속이 뒤틀려서요.”
그는 몇 모금을 맛있게 들이마시고 나서 천천히 연기를 내뿜었다. “얘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러시아 전방에서 트럭 수리 센터에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오더니 우릴 모두 데려간 거에요. 그때가 1942년 말이었어요. 바람과 눈보라가 매섭게 불던 날입니다. 그들은 마치 양떼를 몰듯이 몰고 갔지요.
이따금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 이 땅바닥에 쓰러지곤 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총으로 그 사람 머리를 쏘아 진눈깨비 속에 내버려두고 떠났지요. 저도 별 수 없이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전 러시아 말을 알고 있었지요. 한 러시아 병사가 발로 걷어차며 일어서! 하고 말했을 때 저는 러시아말로 대답할 수가 있었습니다.
‘동무, 난 계속해서 갈 수가 없어요. 조용히 죽게 해줘요.’하고 말했지요. 내가 그 대열에 끼어있는 마지막 포로 중의 하나였어요. 나머지는 내 뒤로 백 피트나 떨어져 있었고, 눈발에 가려서 보이질 않았어요. 그는 내 머리 위로 총을 겨누고 중얼거렸습니다. ‘빨리 죽어 버려, 나를 귀찮게 굴지 말고!’ ”
바로 그 때 어떤 사람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삼베 자루를 뒤집어 쓰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삼베 자루를 벗어 젖히자 30세 가량의 아름다운 여성이 나타났다.
“제 아내입니다.” 스테반이 말했다.
그 여성은 미소를 짓고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말을 중얼거리더니 나선형 계단 위로 올라가 버렸다.
“하느님은 내가 살기를 원하셨던 모양입니다.” 보도니는 말을 계속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따뜻한 이사바에 누워 있는 걸 알았어요. 내가 쓰러진 장소는 여기서 반 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숲과 마을 사이에 있지요. 불쏘시개를 주우러 나갔던 17세 소녀가 눈더미 속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 소녀는 자신의 힘센 팔로 내 코트 깃을 움켜쥐고는 한 손엔 불 지필 나뭇가지를 안은 채 감자자루를 끌듯이 나를 끌고 왔습니다.”
“러시아의 농부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지요.” 빼뽀네가 말했다.
“모이넷도 출신의 바고라는 사람도 이런 식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그 농부들 덕택에 생명을 건졌지요, 그런데 이 소녀는 러시아인이 아니었어요. 폴란드 출신으로 가족들이 농업 인구 부족 때문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지요. 그 가족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지도 않은 양식을 나와 함께 나눠 먹으면서 이틀 동안 나를 숨겨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영원히 계속될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소녀와 나는 엉터리 러시아 말로 겨우 서로의 의사를 소통해 왔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길을 잃은 한 이태리 병사가 바로 몇 시간 전에 그 식구들과 마주쳤음을 가서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소녀는 억지로 동의했습니다. 잠시 후에 소녀는 권총으로 무장한 사람과 총을 든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손을 들었지요. 그들은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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