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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오륙 년 전 일이다. 어느 선배 목사님이 한 번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 목사님은 해방 후 월남하신 분으로 우리 집안 내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조부님에 관해 말씀하였으며, 우리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셨다. 뿐만 아니라 늦게 목사가 된 나를 아껴주시며 사랑해 주셨다.


그런 분이기에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대접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릴 때 그 분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내가 김 목사를 보자고 한 것은 그간 나도 모르게 김 목사에게 섭섭하게 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다 잊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큰 형님 같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늘 보살피며 도와주시면서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냐고 대답은 했지만 그 분에게 전혀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 드신 분의 특유한 독선과 고집 때문에 내 입장이 난처해지고, 처신하기가 힘들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십이 넘어 언제 하나님께서 오라 할지 모르기에 행여라도 내게 상처를 입힌 일이 있다면 용서받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참으로 아름답게 생을 정리하는 용기 있는 분이라 생각했다. 그 만남이 있은 지 몇 달 후에 그는 양로원으로 들어가셨고, 몇 년을 거기서 지내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주 최근에 한 동료 목사님이 방법은 달랐지만 그 선배 목사님과 같이 내게 진심 어린 작별인사를 하고 생을 마감했다. 암으로 여러 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왕성한 의욕을 보이던 그가 내게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감사 카드를 보내왔다.


“김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그간 격조하였기에 잠시 제 근황을 알려드림과 동시에 몇 자 감사의 말씀을 올리려고 펜을 듭니다. 지난 5월 모국방문 후에 제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키모로 들어갔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아 호흡곤란, 보행곤란, 흉막에 물이 차 매일 빼내야 하는 등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상태에서 김 목사님과의 우정과 애환을 회고해 보고 짧은 지면이나마 감사와 온정에 대한 표현이 있어야겠다 싶어 이렇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그 동안 너무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기라도 하면 한 턱 쏘겠습니다. 거듭 감사 드리고 두 분 건강하시고 내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그 편지를 읽으며 아내와 나는 그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내는 곧바로 찾아가자고 했지만 난 지금 상황에서 방문한다는 것은 그와 가족들을 괴롭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편지를 썼다. 교단은 달랐지만 그와 나는 지난 사반세기 동안 여러 분야에서 함께 일하며 친분을 쌓았다. 본의 아니게 실수한 것이 있으면 잊어달라 하신 선배 목사님을 모시고 같은 봉사단체에서 일하기도 했고, 지금 온타리오 목사회 전신인 한인교역자회에서 함께 봉사하기도 했다.


주관이 뚜렷했고 강직했던 그와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되면 쉽게 물러서지 않았던 나와는 대립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우린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큰 문제없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편지에 함께 지내던 시절의 일들을 간단하게 언급하고 속히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같이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노라 적었다. 그리고 그가 한 턱을 쏘면 나는 두 턱을 내겠다는 말로 편지를 끝냈다. 


그가 8월 18일에 보낸 편지를 받은 다음날 답신을 보냈는데 답장 아닌 그가 눈을 감았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8월 29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게만 아니라 주위 분들에게 생의 이별을 고하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워있기도 힘든 상태에서 일어나 앉아 함께 지내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생의 마지막 편지들을 쓰는 그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나도 생을 정리하기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진 운명”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해져 있는 그 운명의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생의 경계선 넘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렇게 가버린 이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을 “그 사람 죽었대.”라 말하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일상생활을 계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으로 가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닥 모를 때의 심연”이 우리 모두의 앞에 놓여 있으니까 말이다. 성경은 이 사실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의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 말해준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아침 해가 떠오르면 살아질 수밖에 없는 안개와 같은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은 남기고 가는 것이 주어진 인생의 몫을 감당하는 길이라 믿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란 시간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고 순간순간을 “마지막 수업”을 하는 학생의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손해를 주는 일을 하지 말며,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앞장서서 실천하면서 말이다. 


성경은 이같이 살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말고, 최대한으로 늘려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능을 최선을 다해 발휘하여 이웃과 사회에 유익을 끼쳐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들은 우리가 가진 것은 우리만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살아간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삶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우리에게 할당된 은사와 능력을 이웃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아울려 인생연극이란 연극이 막을 내릴 때까지 우리가 계속해야 할 연기는 어떤 면으로든 우리로 인해 상처받고, 피해보는 사람들이 없도록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미 그런 일을 행했다면 피해 받은 분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며 우리들의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화목하며, 그들에게 관용과 긍휼을 베풀며,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우리들의 것처럼 여기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어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남은 삶의 기간 동안 우리에게 위로 받고 힘을 얻어 새로운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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