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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년 전 녹내장 검사를 받았다. 정기 시력검사를 받기 위해 안과에 갔더니 오랫동안 내 눈을 검진해오던 의사가 녹내장 검사도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백내장이란 말은 들어보았지만 녹내장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기에 그것이 무슨 병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체를 포착한 시신경이 그것을 뇌에 전달시켜 줌으로서 그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게 되는데 수많은 시신경 중에서 둔해지는 것들이 생기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계가 좁아지게 되며, 이런 현상을 가리켜 녹내장이라 부른단다. 

 

그는 계속하여 녹내장이 심해지면 앞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 그 사람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함은 물론 상대의 얼굴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녹내장 현상이 심해지면 시력까지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녹내장은 갑자기 생기거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오는 것이기에 검사를 받기 전에는 본인이 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기가 극히 힘들다고 한다. 

 

모르던 의학지식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검사 결과 나는 녹내장 환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지니고 집으로 돌아오다 문득 새로운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만일 정신적인 녹내장에 걸려 있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갑자기 내게 그런 두려움이 엄습해 온 까닭은 자신의 지극히 좁은 정신적 세계와 제한된 지식 그리고 그의 미숙한 판단력에 절대적인 신뢰를 두고 있던 어떤 분으로부터 당했던 심적 고통이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민 초기부터 알게 되었던 S집사님은 얼핏 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착한 분이었다. 남들이 망설이는 일에 서슴없이 앞장 서고, 맡은 일에 충실할 뿐 아니라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조차 하지 않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착함 속에 감추어진 무기력과 편협함 그리고 그의 표리부동한 생활이 조금씩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아무리 잘못된 일을 한 사람일지라도 책임을 묻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가 얼마나 관대하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그의 위선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자기와 직접 관련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남들에게 강조하던 용서와 관용을 베풀지 않았고,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보다 더 심하고 철저하게 상대를 응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너그럽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면모를 과시하며,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을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밝히지 못하다 보니 항상 중간에 서서 양편의 눈치를 살폈다. 관여하는 어떤 문제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중재안을 제시할 수 없는 사람이 그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그의 불투명하고 줏대 없는 행위가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그가 속한 단체의 두통거리가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가 어려운 일마다 현명한 중재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또 어려운 일들을 잘 처리함으로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가 이런 엄청난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음은 자신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극히 단편적인 지식과 성숙하지 못한 분별력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자기가 인지할 수 있는 시야는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아는 바는 다른 사람들에 비교할 수 없게 빈약했다. 그러한 데도 자기야 말로 주위 사람들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며 앞장설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기가 보는 관점의 타당성만을 내세우고, 그의 생각을 우월성을 고집하며, 그의 판단만이 옳다고 주장하다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들 주위에는 이처럼 불행한 정신적 녹내장 환자들뿐만 아니라 영적 녹내장에 걸린 이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의 법도와 뜻에 벗어난 행위나 생각이 죄일진대 그 누가 자신은 죄와 관계 없는 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처럼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비통하게 외칠 수는 있을지언정. 

 

그런데도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있는 자기의 더럽고 추한 죄악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별것 아닌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이들이야 말로 영적 녹내장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다. 예수님 당시에 자신들의 의에 도취하여 자기들만이 하늘나라를 향하는 열차에 승차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을 비방하고 비판한 바리새인들이야 말로 깨달아야 할 자기네 위선과 죄악을 외면한 채 치료가 불가능한 경지에 도달한 영적인 녹내장 환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네들의 위선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며 예수님은 “화 있을 지어다. 너희들 위선의 대가들인 바리새인들이여!”라 말씀하신 것을 잊어선 안 될 줄 안다.

 

육체적인 녹내장은 그 병에 걸리는 환자 만의 문제다. 환자만 고통 당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녹내장은 나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에 매우 심각한 병이다. 육신의 녹내장은 안 고쳐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정신적인 녹내장은 자신을 파탄시키고 이웃을 괴롭히는 몹쓸 병이기에 반드시 치료받아 그 병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들 보다 더 무서운 녹내장은 영적인 녹내장이다. 영적 녹내장 환자의 말로는 영혼이 파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하게도 우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며, 그들의 삶과 나아가서는 영혼까지 파멸시키는 영적인 녹내장에 걸려 있다고 말해도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정신적 혹은 영적 녹내장에서 나음을 입으려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길 밖에 없다. 그분 만이 무한한 시계와 전능하신 지혜를 소유하고 계시기에 우리들의 마음의 녹내장을 고쳐주실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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