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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heesoo
영불 갈등의 캐나다 역사(14)
chungheesoo

 

(지난 호에 이어)

4.16 1930년대 대공황 및 퀘벡독립 운동

1920년대는 북미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경제적 호황기였다. 그리고 북미 주민들은 이러한 호황이 영원히 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과소비와 비합리적 투기적 투자를 했다.

그래서 이러한 환상은 결국 1929년 10월 24일(목요일)에 New York 증시가 무너지면서 사라졌다. 그래서 이날을 암흑의 목요일(Black Thursday)라 한다. 그 후 북미 경제는 10년간의 대공황(Great Depression)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33년의 퀘벡 실직자율은 31% 이었고 주가는 폭락했다. 예를 들자면 Dupont de Nemours 의 주가는 $231에서 $22로 급락했다. 실직자들은 이민자와 여성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항의도 했다. 퀘벡 정부는 무직자를 Montreal 북쪽에 있는 Abitibi 지역으로 보내 농사를 짓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Abitibi 국회 의원인 Hector Authier 는 이런 말을 했다. “ Faites donc savoir aux gens de Montreal que l’Abitibi n’est ni un hopital, ni un refuge et qu’il y a pas de Societe Saint-Vincent- de-Paul chez nous. Les gens sont charitables, mais actuellement nous avons assez de votre.’’ (Lacoursiere,p.148)

(Montreal 주민에게 알린다. Abitibi는 병원도 아니고 피난처도 자선사업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들 (Montreal 에서 보낸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실제로 그분들은 오지 않으면 좋겠다.)

Abitibi 주민들은 지역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Montreal 에서 오는 사람들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퀘벡 독립 운동가는 물론 이 기회를 이용하며 독립의 필요성을 내세웠다. 당시 퀘벡 지성인의 단체인 Les Jeune Canada 의 지도자 Paul Simard는 1935년 8월 4일 다음의 독립 선언을 했다.

“Il nous faut conquerir a tout prix notre independance intellectuelle, politique, economique…Quebec doit devenir au plu tot un Etat libre dans lequel la nation canadienne-francaise sera absolument maitresse de ses destinees. Dans le domaine economique, il faut vaincre tous les spoliateurs etrangers par le ralliement de tous sous une meme banniere : celle d’un meme chef.’’ (Lacoursiere, p.148-149).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성적, 정치적 및 경제적 독립을 해야 한다. 퀘벡은 자유 국가가 되어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경제분야에서는 우리가 모시는 우리의 깃발 밑에 모여 강탈하는 외국인을 쫓아 내야 한다.)

1936년에 Duplessis 및 Villeneuve 추기경은 변화 없이는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적으로 캐나다는 깨지고 말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한편 또 하나의 퀘벡 국가주의자의 정신적 지도자인 Lionel Groulx 신부의 말을 들어 보자.

“ Qu’on veuille ou pas, notre Etat francais, nous l’aurons : nous l’aurons jeune, fort, rayonnant et beau foyer spirituel, pole dynamique pour tout Amerique francaise. Nous aurons aussi un pays francais, un pays qui portera son ame dans son visage’’(Lacoursiere, p.149)

(우리가 원하건 안 하건 우리는 프랑스계 나라를 세운다. 이 나라는 젊고, 강하고 사방에 빛나는 나라다. 또한 우리나라는 아메리카 프랑스 전역의 정신적 아궁이다. 우리나라 얼굴 속에서 우리의 혼을 볼 수 있다.)

Groulx 신부는 차후에 자기의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독립주의자는 아니고 연방주의자라고 해명 했다. 한편 젊은 정치인들은 l’Action liberale nationale 이라는 보수적 정당을 발족시켜 1936년 총선 때 Duplessis의 극 보수당과 합쳤다.

한편 정부의 무능을 극복 하기 위해 Jesuite 종교 단체에서는 시민복지학파 (Ecole sociale populaire)를 세워 사회 개혁을 호소하여 농사융자, 빈곤 모성 수당, 최소 노임, 모성의 직장포기 그리고 할부판매 금지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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