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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hyunsoo
이야기꾼이 없어지고 있다
Hwanghyunsoo

 

KBS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이 지난해 6월에 문을 닫았다. 당시 언론은 ‘21년 역사의 개그 프로그램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KBS가 ‘개그맨을 더 이상 뽑지 않는다’는 것이 더 섭섭했다. MBC와 SBS는 벌써 공채 개그맨을 안 뽑은 지가 오래되었으니, 앞으로 신인 개그맨은 보기 어렵겠다.

 

개그는 사람을 웃기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관객의 웃음소리가 바로 개그맨의 능력이다. 이런 직업적 특성은 개그맨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반면 매력이기도 하다.

 

간혹 얼굴이 예쁘거나 인물이 좋아 인기가 있는 경우가 있으나 웃기지 못하면 바로 ‘아웃’이다. 그래서 개그맨들은 소속사에서 아무리 뒤를 봐줘도 개인의 재능이 없으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 그것이 개그맨을 키우는 기획사가 많지 않은 이유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웃기는 능력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기도 하다. 하긴, 요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돌 가수, 배우, 스포츠맨까지 기웃거리며 웃음보따리를 풀어 보인다.

 

 

개그 프로는 개그맨 각자가 짜낸 아이디어와 작가, 연출자의 의견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개그맨의 상당수 아이디어는 발상의 기발함에도 불구하고 방송용으로 부적합하면 채택되지 못한다.

 

개그맨들이 소재 빈곤에 시달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개그의 소재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적, 특정 집단, 직업인 등의 소재는 아예 불가능하고 위험한 소재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가 쉽지 않아 많은 개그맨이 이름을 알리기도 전에 방송가를 떠난다.

 

개그맨이 있기 전에는 코미디언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개그맨은 한자리에 서서 말과 가벼운 몸짓으로 웃기는데 비해, 코미디언은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연기로 웃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개그맨은 직접 대본을 써야 하지만 코미디언은 작가가 쓰고 코미디언은 연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개그와 코미디의 구분이 분명하지는 않고, 그래서 외국에는 개그맨이라는 단어도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개그맨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해 코미디언이란 직업군은 사라진다.

 

사실 개그맨들은 선배 코미디언들이 출연하는 프로의 심부름 정도를 하는 신세였다. 개그맨을 처음 뽑은 것은 1979년에 TBC(동양방송)가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만들면 서다.

 

TBC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들어온 개그맨은 서세원(1회), 이성미(2회), 김형곤(3회) 등이며 MBC는 1981년에 개그 콘테스트를 열어 최양락, 이경규, 엄용수 등을 발굴했고, 2회에는 최병서, 황기순 등을 뽑았다.

 

KBS는 1982년부터 개그맨을 뽑았는데 1기 심형래, 2기 김미화, 이봉헌, 임미숙, 김한국, 이경애. 3기 팽현숙 등이다. 이들은 초기에 코미디언들의 기세에 눌려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시청자들의 취향이 바뀌면서 선배 코미디언들의 자리를 서서히 차지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인 조선 후기에도 개그맨과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이야기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인 '전기수(傳奇?)'다. 상상 속 용궁 이야기를 담은 <심청전> 같은 기이한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이다.

 

전기수는 시장이나 다리 밑, 활터, 담배가게, 한약방, 사랑방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주로 소설을 읽어 주었다. 소설 내용을 줄줄 외운 뒤 혼자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읽었다. 감정을 섞어 이야기를 더욱 맛깔나게 표현했다.

 

조선 정조 시절의 문집인 추재집(秋齋集)에 따르면, 당시 동대문 밖에 아주 유명한 전기수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청계천 첫 번째 다리와 두 번째 다리, 교동 입구와 대사동 입구 등을 번갈아 다니며 소설을 읽었다. 이야기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한 번 자리 잡은 청중은 전기수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야기를 한참 들려주다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입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중은 다음 대목이 궁금해 너도나도 돈을 꺼내 주었는데 청중이 돈을 모두 던지고 난 뒤에야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는 전기수 같은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 정말 많았다. 또한 이야기꾼도 그냥 말만하지 않고 ‘창(唱)’에 얹어 구현하는 판소리 광대, 판소리 소리꾼도 있었다.

 

 

왜 이런 전기수라는 독특한 직업이 생겨 났을까? 조선 후기에는 이야기 책인 소설이 매우 유행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양반과 상민 할 것 없이 누구나 소설을 읽고 싶어했다.

 

그래서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요즘의 도서관)가 성행하고, 싼 값에 찍어낸 방각본 소설까지 나왔다. 또 날마다 한양 거리를 뛰어다니며 책을 파는 조신선 같은 책장수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책 값이 워낙 비싸서 책을 빌리거나 사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고전 소설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는 전기수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전기수는 아주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전기수가 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소설을 낭독하려 하면, 어느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심지어 부유한 아낙네들은 남편 몰래 전기수를 집안으로 불러들여 소설을 읽도록 했다.  

 

당시 전기수의 주요 고객은 무지한 서민과 규방의 여성이었다. 이들은 전기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의식도 깨우치고, 웃고 웃으며 사회도 비판했다. 다시 말해 전기수는 일종의 이야기 선생이자, 조선의 또 다른 인기 연예인이었다.

 

전기수의 전통은 드문드문 이어지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소설책을 파는 장사꾼들의 판매 수단으로 이용된다. 1960년대에는 ‘글패’라는 무리가 시장에서 소설을 읽어주며 책을 팔았다. 그들은 장날이면 옹기전이나 나무전 앞에서 선비의 상징인 정자관을 쓴 채 소설을 앞에 펼쳐 놓고 큰 소리로 읽으면서 손님에게 장사를 했다.

 

전기수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라디오가 보급되면서다. 라디오는 전기수보다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제공했고, 또한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드물어지고 책이 많아진 것도 전기수가 사라지게 된 까닭이었다.

 

전기수가 벌써 사라졌듯이, 앞으로 AI 시대에서는 훌륭한 이야기 꾼인 코미디언, 개그맨 등의 직업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벌써 인공지능을 가진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으니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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