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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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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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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2) 드레스 코드로 보는 세계사

명품(2)

드레스 코드로 보는 세계사

Pyramid costumes | Nefertari queen, Ancient egyptian fashion history,  Egyptian goddess

명품은 어떻게 왕의 권력에서 우리의 지갑으로 이동했나

역사를 움직인 동력은 전쟁과 경제만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 이면에는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치열한 ‘명품의 역사’가 흐르고 있었다. 고대 왕정부터 크루즈 파티가 열리는 2026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뒤흔든 명품의 연대기를 따라가 본다.

 

1. 고대 왕정 시대: "명품은 신(神)과 왕의 전유물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명품은 백화점 매장이 아니라 '무덤'과 '신전'에서 태어났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명품은 아무나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신과 소통하는 파라오(왕)와 제사장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한 권력' 자체였다.

그 시절의 에르메스: 고대 이집트의 최고급 명품은 황금과 라피스 라줄리(청전석), 그리고 실크처럼 얇게 짠 파라오의 리넨이었다. 

특히 푸른 빛을 내는 보석 라피스 라줄리는 아프가니스탄 깊은 산맥에서만 나오는 초고가 수입품으로, 왕비들의 눈화장품과 장신구로 쓰였다.

여성들의 흥미 포인트: 고대 로마 시대에는 중국에서 온 '비단(Silk)'이 최고의 명품이었다. 얼마나 비쌌는지 비단 1kg이 황금 1kg과 맞바꿔졌고, 로마 의회에서는 여성들이 온몸에 비단을 감아 나라의 황금이 중국으로 유출된다며 비단 수입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의 명품은 인간과 신, 왕과 노예를 구별하는 선이었다.

 

2. 중세~조선 왕가와 귀족 시대: 법으로 명품을 통제하다

중세 유럽의 성곽과 동양의 왕실 정치 시대로 접어들면서, 명품은 귀족 계급의 신분증이 되었다. 재밌는 것은 이 시대에는 왕과 귀족들이 평민들이 명품을 따라 입지 못하도록 아예 사치 규제법(Sumptuary Laws)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색깔과 원단도 계급순: 중세 유럽에서는 지중해의 희귀한 소라 고둥 만 개를 갈아야 겨우 한 방울을 얻을 수 있었던 '보라색(Royal Purple)' 염료를 오직 왕실만 쓰게 했다. 평민이 보라색 옷을 입으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벨벳과 담비 모피 역시 귀족 여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동양의 조선 시대에도 계급에 따라 가마의 크기, 옷의 자수(흉배), 백의만 허용하고 가체의 높이를 법으로 엄격히 제한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최초의 디자이너: 18세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명품의 황금기였다. 단발머리를 몇십 센티미터씩 위로 세우고 레이스를 휘감았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곁에는 '로즈 베르탱(Rose Bertin)'이라는 의상 디자이너가 있었다. 역사는 그녀를 최초의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디자이너이자 패션 장관'이라 부른다. 이 시대의 명품은 태생적인 핏줄의 증명서였다.

마리 앙투아네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리 앙투아네트

 

3. 나폴레옹의 비즈니스 반전: 내 아내의 사치는 프랑스 경제를 살린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의 하늘을 찌르는명품 영수증을 보며 화를 냈지만, 한편으로는 조세핀의 명품 쇼핑을 교묘하게 권장했다. 왜 그랬을까? 

바로 프랑스 패션 산업을 살리기 위한 국가적 비즈니스 전략이었다.

프랑스산(Made in France)의 의무화: 나폴레옹은 궁전의 모든 여인은 반드시 프랑스 리옹(Lyon)산 실크와 레이스로 만든 옷만 입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조세핀에게 가장 비싸고 화려한 프랑스산 옷을 입혀 전 유럽에 과시하게 했다.

영국을 향한 경제 보복: 당시 프랑스의 라이벌인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면직물을 대량 생산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이 영국산 면(Cotton) 옷을 입은 것을 발견하자 당장 벗어서 불태우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과: 조세핀이 화려한 프랑스산 실크 드레스를 입고 전 세계 외교관들을 만나자, 유럽 전체에 프랑스 옷이 최고라는 ‘명품 밈(Meme)’이 퍼졌다. 조세핀의 사치가 프랑스 섬유 및 보석 산업을 먹여 살리는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오늘날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있기 200년 전에, 이미 나폴레옹은 명품의 경제학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자크-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과 조세핀 황후

나톨레온 대관식에 참가한 조세핀


 

4. 산업혁명과 근대 부호 시대: 돈으로 신분을 사는 신흥 귀족(부르주아)의 등장

19세기, 영국의 증기기관이 돌고 산업혁명이 터지면서 세계 역사는 대격변을 맞이한다. 왕과 귀족이 몰락하고, 공장과 상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신흥 부호 계층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핏줄은 평민이었지만, 귀족보다 돈이 많았다. 이 타이밍에 우리가 아는 진짜 명품 브랜드들이 태어난다.

장인들의 브랜드화 (1837년 에르메스, 1854년 루이비통): 돈이 많아진 부호들은 기차와 증기선을 타고 유럽 여행(그랜드 투어)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때 마차의 마구를 만들던 에르메스는 최고급 가죽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고, 놋쇠 공이었던 루이비통은 부유한 사모님들의 드레스가 구겨지지 않도록 사각형 모양의 튼튼한 여행용 트렁크를 발명해 대히트를 쳤다.

패션의 권력이 이동하다: 영국인 디자이너 찰스 워스(Charles Worth)는 파리에 의상실을 열고, 옷에 자신의 브랜드 라벨을 최초로 꿰매어 넣었다. 과거에는 귀족 사모님이 하라는 대로 시녀처럼 옷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디자이너가 이게 올해의 유행입니다라고 선언하면 부호들이 줄을 서서 가치를 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시대의 명품은 성공한 신흥 엘리트의 훈장이었다.

 

5. 현대(20~21세기): 명품의 대중화, 그리고 진짜 부자의 선택

20세기에 접어들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고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명품은 또 한 번 변신한다. 코코 샤넬은 코르셋을 찢어버리고 남성의 정장 원단(저지)으로 활동적인 여성복을 만들어 자유라는 명품을 선물했고, 크리스찬 디올은 전후의 삭막함 속에 '우아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명품은 거대 금융 자본의 (LVMH, Moet Hennessy Louis Vuitton, Kerring)의 손에 들어가 대량 생산되며 누구나 할부로 살 수 있는 대중적 명품(Masstige)의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맺음말: 역사가 증명하는 최고의 명품

고대 파라오의 황금도, 베르사유의 보라색 드레스도, 현대의 에르메스 버킨백도, 그 본질은 결국 나는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적 도구였다.

하지만 명품이 흔해진 현대 사회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거대 기업이 찍어내는 로고 가방을 들고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애쓰는 것이 과연 진짜 명품일까?

왕정 시대의 법적 통제도, 현대 자본주의의 마케팅 유혹도 뛰어넘어, 저렴한 옷 속에서도 자신만의 품격을 찾아내고, 그 남은 여력으로 이웃을 돕고 세계평화공존을 자연선택하며 세계여행을 통해 배우는주체적인 삶으로  역사의 눈을 돌려 볼수 있을까. 

대기업의 로고 뒤에 숨지 않는 당당한 개인의 자존감이야말로 인류가 진화시켜 온 가장 귀하고 희소한 최고급 명품일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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