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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예수님과 사도들 -가룟 유다와 사도 맛디아(1)
daekim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삼십을 달아주거늘, 그가 때부터 예수를 넘겨 기회를 찾더라.”( 26:14-16)

 

때에 예수를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은을 거두며 이르되이것은 값이라. 성전 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하고, 의논한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27:3-8)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보면 배반자들만을 감금하는 구역이 있는데, 거기서 가장 중죄인 취급을 받는 세 사람은 가룟 유다, 브루투스, 캐시우스다. 그 중에서도 머리는 사탄의 입 속에 빨려 들어가 있고, 몸통은 밖으로 빠져 나와서 발버둥치는 가룟 유다가 제일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고 있다.

 

유다 다음으로는 암살단을 지휘하여 양아버지 시저를 죽인 브루투스와 암살음모를 총지휘한 캐시우스가 맹렬한 지옥불 속에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야비한 배반자 세 명이 사후에 어떤 형벌을 받는 가를 “신곡”의 지옥편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한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처럼 팔레스타인 북부의 갈릴리 아닌 남부 출신이었다. 그가 태어난 곳이나,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성경에 없다.

 

하지만 예수님이나 다른 제자들의 눈에 비친 유다는 유능하고 총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구약에 관한 지식이나 지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빌립이나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세리 마태를 제치고 예수님 일행의 회계를 담당했던 제자가 유다였기 때문이다.

 

동료들로부터 인정받고 예수님의 신임까지 받았던 유다는 어째서 주님을 배반했을까? 어떤 이들은 그가 다대오나 유다와 마찬가지로 열성당원이었다고 말한다.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께서 로마정권을 무너뜨리는 혁명전선의 선두주자가 되어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가 바라는 것과 정반대인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을 보고 유다는 주님을 버렸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수님을 산헤드린 공회에 팔아넘긴 장본인은 가룟 유다라는 사실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마 26:21) 하실 때까지 그의 악랄한 계획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뜻밖의 말을 들은 제자들이 놀라서 이구동성으로 “저는 아니지요?”라며 예수님을 쳐다보자 유다도 “선생님, 저 입니까?”라 묻는다.

 

그런 유다를 향하여 예수님은 “그렇다.”라 답하신다. 이때 유다는 예수님 바로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만 다른 제자들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유다에게 빵 한 조각을 주시며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요 13:27) 하신 말씀은 모든 제자들이 다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회계를 맡은 유다에게 지시한 것을 빨리 시행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예수님은 그들 중 누군가가 그를 팔아넘길 것이라 말씀하신 후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될 것이지만 나를 파는 사람에게는 큰 화가 미칠 것이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마 26:24)라 들려주셨다.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간절하면서도 강한 권면이요 경고였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면 유다는 예수님이 주시는 그 소중한 기회를 묵살하고 캄캄한 밤의 세계로 나감으로 “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요 13:30)

 

최후의 만찬 자리를 빠져 나온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고 은 삼십을 받기로 합의한다. 여기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한 까닭이 탐심 때문이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1,200불 정도에 해당하는 은 삼십은 3년을 섬긴 예수님을 팔고 받을 대가로서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성전 경비원들을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다가온 유다는 “선생님”이라 부르며 입을 맞췄다. 성전 경비원들과 미리 짜둔 암호였다.

 

예수님은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나를 파느냐?”고 차분하면서도 슬픈 음성으로 대꾸하셨다. 그 당시 입맞춤은 사랑과 존경의 외적 표현이었기에 유다의 그런 위선적인 행위는 참으로 역겨운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분노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친구여,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마 26:50) 말씀하시고, 그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요 18:4)고 물으신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답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요 18:8) 말씀하신다. 이는 “너희들이 원하는 사람은 나니 나만을 체포하고 제자들에게는 손대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시는 깊은 신학적 의도도 내포하고 있다.

 

“내가 그니라.”( I am he.)란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출 3:14)라 그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밝히신 것과 예수님이 일곱 번에 걸쳐 그의 신분을 드러낸 “I am statement”의 뜻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그니라.”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은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함이니라.”를 의미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나사렛 예수임을 밝히신 후 예수님은 그를 둘러싼 성전 경비원들에게 “이제는 어둠의 권세가 날뛰는 너희 때”(눅 22:52-53)이니 잡아가라고 하신다. 베드로를 비롯한 몇 제자들이 그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그네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연행한다.

 

그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끌고 가는 것을 보며 유다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을 범했는가를 깨닫는다.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받고 빌라도의 법정에 넘겨진 예수님에게 십자가형이 내려진 것을 확인한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말한 후 그들에게서 받은 은 삼십을 돌려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알아서 하라.” 말하자 유다는 예수님을 팔고 받은 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목매어 자살한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진정한 까닭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역사가 누가는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눅 22:3)라 기록함으로 유다가 사탄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끔직한 죄를 범했다고 말해준다.

 

요한은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요 13:2)라 말함으로 유다는 사탄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배반했다고 들려준다.

 

그러면서 요한은 유다가 오래 전에 이미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 기록함으로 예수님은 처음부터 유다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을 팔 것을 알고 계셨다고 증언한다.

 

이 같은 유다와 요한의 증언들을 종합해 보면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부터 악하고, 거짓되고, 위선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이 있기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의 집에 들르신 일이 있다. 그때 마리아가 비싼 향유 한 병을 깨어 예수님의 말에 붓자 그 냄새가 온 집에 가득 찼다.

 

그러자 유다는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에 부어 낭비하느냐고 불평했다. 유다가 마리아에게 그 같은 비난을 한 것은 그녀가 향유를 팔아 그에게 주면 회계인 그가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선적으로 말하면 유다는 겉으로는 믿음이 좋고, 경건하며, 정의와 공평을 사랑하며, 불쌍한 이들을 위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의 유익만을 취하는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도 예수님의 눈을 쳐다보면서 “제가 선생님을 판다는 것은 아니겠지요?”라 했을 만큼 유다는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고 거짓을 말할 수 있는 사악한 사람이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유다는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주님“이라 하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른 사실이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유다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지 않은 것은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유다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드리지 않았으며, 그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든 철저하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극도로 교활한 이기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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