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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그들이 당장은 따라 올 수 없는 곳으로 가시겠다고 하자 그들은 큰 슬픔에 잠긴다. 예수님만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그가 떠나시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였다.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본문으로 택하는 말씀이며, 낭패와 실망으로 좌절하는 이들을 위로해주며 그들에게 크나큰 소망을 안겨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그가 먼저 아버지의 집에 가서 제자들이 있을 처소를 마련하여 그들을 영접할 준비를 하겠다고 하시며,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도마가 “저희들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겠습니다.”라 말한다.

솔직한 도마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고 직선적으로 한 이 말 속에는 “예수님,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처리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이 유익하다.”(요 11:50)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가야바는 예수님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로 한 말이지만 그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음은 만백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하신 것은 그가 곧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기에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도마의 의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신 것이다. 동시에 이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3년 간 가르치시고 선포하신 진리가 요약되어 있기도 하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핵심은 하늘나라의 비밀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질 영생의 특권에 관해서였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며, 생명의 길이 무엇인가에 관해 구약은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다. 모세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신5:33)라 하였고, 이사야는 깨끗하지 못한 자는 걷지 못하는 “거룩한 길”을 걸어야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들려주고 있다.(사 35:8)

다윗은 “여호와여,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들을 생각하셔서 평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시 27:11)라 기도했다. 이처럼 많은 가르침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가기 위해 걸어야 할 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곧 그 길이다.”(I am the way.)라 말씀하신 것이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 그가 가야할 길을 말로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네가 찾고 있는 그 길이다.”라 말씀하신 것이다.

어느 탐험대가 아프리카 대륙을 탐색하던 중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들이 가진 지도에는 더 이상 표시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 그들과 함께 있던 현지인이 말했다고 한다. “지금부터는 내가 길이니 나를 따르십시오.”라고 말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실 때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명시하시거나 그의 제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설명해 주시지 않으셨다. “나를 따르라.”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의 전부였다. 따라서 주께서 가시는 길을 알려달라는 도마의 요청에 예수님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신 것은 “나를 따르라. 그러면 너희들은 하늘나라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을 것인가? 복음서에 기록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동일하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 막 8:34; 눅 9:23)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길 되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인 “자기를 버리는 것”은 세상을 따르며 자신의 이기주의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옛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3:20) 증언할 수 있어야만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세상을 향한 “사랑과 용서”로 요약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원래 십자가는 살인이나 반역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형하는 형틀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 짐을 지시고 그 위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기에 치욕의 십자가 아닌 영광과 승리의 십자가로 그 의미가 변하였다.

우리들이 져야 할 십자가는 한없는 고통과 눈물과 불굴의 인내가 있어야만 가능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 자체가 끊임없이 하나님에게 도전하며 반항하는 인간들을 용서하며 사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진정 피하고 싶으셨던 십자가를 향한 길을 끝까지 가셨던 것은 인간을 향하신 그의 크고도 변함없는 사랑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를 조롱하며 비웃는 무리를 보시며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눅 23:34)라 하신 기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외면적으로 충실하게 보이는 신앙생활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모든 면으로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거짓투성이의 위선자들이었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구약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바라보지 못했다.

주일마다 빠짐없이 예배 드리고 십일조를 성실하게 바치며 모든 교회행사에 앞장서서 봉사하는 것은 충실한 신앙생활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것들 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참된 믿음생활은 교회와 이웃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저주하는 대신 축복하며,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눈물 흘리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롬 12:14-15).

이것을 모르는 이들은 해박한 성경지식을 자랑하며 미사어구를 총동원해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길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가기를 원한다면 충실한 교회생활을 하며 구원의 복음을 말로서 전해야 함은 물론 예수님을 닮은 믿는 자로서 살아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어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또 영적으로 우리를 완전히 파멸시킬 수는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와 같은 슬픈 일은 길 되신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우리들이 원하는 길을 걸어갈 때 일어난다. 이사야는 이것을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라 들려주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생명의 길은 좁고, 험하고, 위험하다(마 7:13-14).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들어서기를 주저하며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은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언제나 동행하시며 위로하고 보호하며 인도하신다.

다윗이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기에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고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의 손길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선언하시며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고 밝히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한 마음을 품을지 모른다. 착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살며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에게 온정을 베풀면 누구나 천국행 열차에 탑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점차적으로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실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단호하면서도 명확하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들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등 성경에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 여러 번 되풀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따라서 예수님 한 분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모두 내려놓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지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힘차게 천성문을 향하여 전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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