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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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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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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23-03-23
극적인 드라마-제 1회 토론토라인댄스 마라톤대회

 

 

제 1회 토론토라인댄스 마라톤 대회를 잘 마쳤다. 첫 회이니만큼 많은 관심을 끌었고 그날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전하려고 한다. 금요일 오후에 몇몇 이사들과 장내 정리를 다 마치고 토요일 오전에 한인회관으로 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벌써 몇몇 선수들과 접수처에 사람들이 붐볐다. 한인회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출장을 갔다고 나보고 꼭 사진을 놓치지 말고 찍으라는 회장님의 부탁이 있었기에 동영상도 좋지만 중요한 장면의 사진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인사회에 라인댄스하는 팀이 여럿이 있는데 이번에 출전하는 팀은 주로 한인회관에서 수업하는 비비안윤팀과 박영주라인댄스 팀에서 많이 출전을 했다. 나는 한인회관의 비비안 윤선생한테 배우고 있다.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이번에 출전 안 하세요?”하는데 나의 배 나온 모습에 뒤뚱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내가 나 자신을 알아야 망신을 당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세 명의 라인댄스 강사인데 두 명은 중국계, 한 명은 한인이다. 사회자의 개회선언과 국민의례에 이어 한인회장의 인사말 그리고 (사)대한라인댄스연맹 회장의 축하영상 그리고 선수선서 후 바로 시합에 들어갔다.

첫 번째 팀은 다섯 곡을 연달아 치는데 모든 스텝을 다 외우는 것도 어렵지만 중간중간에 Tag 이라고 해서 특별한 동작을 해야 하는 곳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어떤 춤은 Restart 라고 해서 스텝중간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곳이 있는데 초보자인 나로서는 찾아내기가 어렵다.

춤을 제대로 추다가도 잠깐 딴생각을 하거나 한눈을 팔면 영락없이 스텝이 꼬인다. 왔다갔다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다 보니 순식간에 다섯 곡이 다 끝났다. 제법 관중 또는 응원단도 꽤 왔다. 많은 박수소리에 환호성까지 들렸다.

두 번째 팀은 열 곡을 추는데 앞 팀에서 춘 다섯 곡에 또 다섯 곡을 더 춘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빗속의 여인과 Amor Fati(아모르 파티)도 포함되었는데 빤짝빤짝 의상을 입은 사람도 꽤 있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응원단의 응원도 아주 신이 났다.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데 한 여학생이 나를 부르면서 “우리 엄마 잘 추시죠?” “어, 엄마가 누군데” ”1233번요” 그래서 돌아보니 무대중앙에서 검은색 의상을 입은 1233번의 여인이 아주 열심히 추고 있었다. 그날 응원상이 있었더라면 그 팀에게 돌아갈 것은 뻔했다. 플랑카드도 두 장이나 준비했으니…

두 번째 팀도 열 곡을 다 추었고 이날의 하이라이트 15곡 팀이 무대로 나왔다. 아무래도 메인이벤트 성격이라 그런지 양팀의 에이스들이 총출동 된 것 같다. 앞에서 들었던 그 열 곡을 다 추고 다섯 곡을 더 추가로 추어야 한다. 이제 비장감 마저 들었다. 가만히 계산해보니 이 사람들은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이 드신 분도 출전을 하셨는데 아무래도 젊은이들과 경쟁하려니 좀 힘겨울 텐데 그 용기가 대단하다. 한 시간의 Performance 끝에 마지막 스텝을 마치자 장내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마무리할 동안 두 강사의 Line Dance 워크샵이 있었고 잠시 후에 수상자발표가 있었다. 우선 다섯 곡을 춘 팀에서는 성국희님, 라인댄스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되었는데 참가를 목적으로 했을 뿐인데 우승까지 하게 되었다고 울먹울먹 했다. 상금 $150.

열 곡을 춘 팀의 우승자는 1233번 신재현님. 어릴 때 무용과를 지원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못 이룬 꿈을 라인댄스로 이루었다고. 상금 $300. 두 사람 다 박영주팀이다.

사회자가 15곡을 춘 팀에는 3명이 동점이 나왔다고 한다. 번호를 부르는데 두 명은 비비안윤팀 그리고 한 명은 박영주팀. 그래서 이 세 사람이 마지막 두 곡을 더 추기로 했다. 음악이 시작되고 결승진출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내가 힐끗 바라보니 두 선생은 속이 타는 모양이다.

박영주 선생은 앞의 두 개를 이겼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것이 상금($1000)으로 보면 메인이벤트의 성격이 있으니 꼭 이기고 싶고, 비비안윤 선생은 이번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못 타면 그야말로 영패가 아닌가. 안절부절 못하며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분주해졌다. 다 모여 한참을 논의하더니 셋 중에 한 명을 호명한다. 우승자는 Ally Lee, 선수선서를 했던, 언니와 같이 출전한 비비안윤 선생 팀이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비비안윤선생팀에서 난리다.

내가 Youtube를 만들면서 몇 번을 보니 셋 다 깔끔하게 잘 췄다. 다만 선수들의 스타일이 다 조금씩 다르다. 심사위원들도 각자가 뽑은 선수들이 다 달랐다고 한다. 이 어찌 극적인 드라마라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선 우승자 성국희님, 신재현님, Ally Lee 그리고 연장전을 치른 클레어 김 그리고 김수현님께 축하의 박수를 드리고, 첫 대회를 멋지게 잘 치른 한인회 관계자들께 치하를 드립니다. 앞으로 한인사회에 라인댄스 열풍이 불어 골 아픈 정치이야기는 그만하고 음악과 춤으로 흥얼대는 신명나는 동포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https://youtu.be/k3E4jxvmRGg

https://www.youtube.com/watch?v=qTWWR7gqshc

(2023.3.2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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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미국의 저력

 

지난주 9일간 일정으로 플로리다를 다녀왔다. 친구들과 골프 여행 겸 Tampa 를 다녀왔는데 골프를 치는 틈틈이 Sunshine Sky Bridge 넘어 St. Petersburg 그리고 Sarasota 와 Clearwater Beach 등 플로리다의 관광지 등을 돌아보았다. Sarasota 에서 Blue Jays 의 Grapefruit League 개막전도 보고 왔다.

1월에는 처형들이 캘리포니아에 살아 방문하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가면 항상 집에서 고스톱이나 치고 음식점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여러 곳 관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 정식이가 LA 근교와 샌디에고 등을 안내해주었고, 처형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와 페블비치, 카멜 등을 구경하였다.

팬데믹 전에 뉴욕과 워싱턴을 방문했고 작년 5월 시카고 누님댁에 며칠 동안 다녀왔다. 우리가 다녀온 곳은 주로 관광지거나 아니면 지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미국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미국의 크기와 저력이다.

지난번 친구 정식이를 만났을 때 그가 나에게 “캐나다는 고속도로가 레인도 몇 개 안되고 작더라” 하길래 은근히 자존심이 생겨 그렇지 않다고 Hwy 401 같은 경우는 6차선 정도 된다고 이야기 했다. 한쪽 길이 6차선이면 상당히 넓다고 생각했는데 LA 근교에서 며칠 그의 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를 다니는데 그 동네는Highway가 한쪽길이 8차선이었고 어디를 가나 길이 무척 넓었다.

Tampa에서도 천지 사방으로 뚫려있는 Highway도 널찍널찍했지만 준 Highway 격인 Local 도로도 한쪽이 보통 4차선이나 3차선 가운데에 좌회전하는 길이 있으니 걸어서 길 한번 건너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사실 온타리오에서는 토론토 밖에만 나가도 Hwy 7 이나 Hwy 2 등도 왕복 2차선인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비하면 엄청 넓은 거다.

게다가 내가 간 곳은 고층빌딩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땅이 무척 넓었다. 한번 나들이했다 하면 행선지가 보통 35마일, 50마일 이러니 움직이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다행히 길이 좋아 막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쇼핑을 가보면 물건도 무척 다양하고 물건의 재고도 상당히 많다. 미국에 가면 토론토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티셔츠 몇 장 정도 사 가지고 온다. 하루는 그곳에 많은 가게를 거느리고 있는 식품점에 갔다. 우리가 아침 일찍 가기도 했지만 과일을 진열했는데 이건 예술이었다. 사과며 오랜지며 줄을 딱딱 맞춰져 있는데 마치 북한군 열병식 하듯이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유튜브 만들어 선전해 주려고 사진을 찍자 메니져가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나…안 찍으면 너네 손해지 뭐.

또 계산대에는 화면이 캐시어가 보는 화면이 있고 고객도 볼 수 있는 같은 크기의 화면이 보기 쉬운 자리에 놓여 있었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차에 싣기 전에 영수증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계산을 하면서 확인하게 되니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확실히 캐나다보다 미국이 한발 앞서가는 것이다.

물론 미국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흑백갈등, 은근히 깔보는 백인들의 우월주의 그리고 심한 빈부격차, 수없이 거론되는 대형 총기사고 등등. 하루는 우리도 골프를 치면서 가끔 마주치는 앞 조에게 “Hi” 했더니 대꾸도 없이 가버린 돼지 같은 놈도 있었다.

바구니 안의 사과가 모두 맛있고 좋은 것만은 아니듯이 미국도 100% 좋은 나라만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세계 모든 나라와 비교했을 때 분명 높은 점수를 받을 나라다. 한 나라 안에 같은 시기에 4계절이 있는 나라, 태평양, 대서양 그리고 북극해까지 끼고 있는 나라, 세계의 경찰로 많은 대륙에 군인을 파견한 나라, 그 미국의 저력을 나는 보았다.

좋고 저력이 있는 나라기는 하지만 나는 캐네디언으로 캐나다에서 살 거다. 세계 최강도 좋고, 저력도 좋지만 밤에도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고, 차 속에 물건이 있어도 주차하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낯선 곳에서도 별로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캐나다가 내가 생을 마감할 곳이다. 미국은 가끔 놀러 가는 걸로 해야겠다.

나의 나라는 역시 캐나다. (202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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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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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비행기가 골프공처럼 착륙하다

 

지난달 탬파로 여행 갔을 때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침 일찍 비행기를 탔으니 오전에 비행기가 착륙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게 되면 창가에 앉아 내가 가게 되는 곳의 경치를 보는 것이 낙인데, 나의 자리는 통로라 그럴 수가 없었다. 비행기가 땅으로 내려갈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의 얼굴 앞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비행기를 자주 타지는 않지만 좀 급하게 착륙하는 것 같았다. 속도도 각도도 좀 급하다 했는데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는 소리가 좀 거칠게 났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좀 심하게 난다고 생각했다. 어~어~어~어~

그런데 비행기가 착륙을 못하고 다시 창공을 박차고 올라갔다. 공중에 다 올라가자 기장의 멘트가 나왔고 비행기는 공중을 한바퀴 선회하고 12분 후 다시 착륙했다. 두 번째 착륙할 때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내려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제대로 착륙하자 앞자리의 몇 명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 찾으러 가면서 몇몇 놀란 승객들과 대화를 해보니 자기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란다. 물론 우리 일행들도 이런 일은 처음이고 그날 비행기 안은 꽉 차 있던데 한 이삼백 명의 목숨이 기장의 실수로 위험에 빠졌다가 또 기장의 기지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만약에 그때 기장이 착륙을 강행하다 제어장치가 파열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하마터면 큰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만해도 식은 땀이 흘렀다.

요즈음은 비행기 사고가 그리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비행기를 거의 안타던 70년대에는 사고가 더 났던 것 같은데 지금은 비행기가 주요 운송수단이 되면서 그리 많은 사고가 나는 건 아닌 것 같다. 몇 십 년 전에는 아무래도 현대 과학이 아직 덜 발달되었기에 비행기에 결함이 더욱 많았지 않았을까?

70년대나 80년대에는 날씨가 추운 날에는 여기저기 움직이지 못하는 차가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기도 했지만 길거리에 고장난 차를 보기 힘들다. 차는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고장난 차는 훨씬 적으니 그것은 그만큼 차를 그때보다 훨씬 잘 만드는 거다. 비행기도 예전보다 훨씬 잘 만드니 고장이 적고 사고가 덜 날수 밖에.

지금은 비행기가 기장이 없어도 운행을 할 정도고 많은 안전장치가 2중, 3중으로 설치되어있기에 그만큼 사고를 줄일 거다. 하지만 100% 모든 것을 기계에만 맡길 수 없고 어떨 때는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도 기계도 실수할 수 있다.

비행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1100백만 분의 1일라고 하니 아마도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이 아닐까 한다. 한번 사고가 나면 많은 인명이 희생되니 신문에 방송에 도배가 되니까 사고 숫자에 비해서 더욱 사람들에게 공포증을 주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산맥들을 넘어갈 때는 Turbulence 를 만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때는 그 시간이 장시간 이어질 때가 있다. 공포의 시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저 눈감고 더욱 절실히 그분을 찾는 수밖에. 지난번 에드먼튼 가는 길에 만난 Turbulence 는 상당히 긴 공포를 나에게 주었다.

비행기 사고는 이륙 후 3분, 착륙 후 8분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마의 11분이라고 한다나? 우리도 거의 사고에 근접했다 무사히 착륙한 경우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아 잘 다녀왔다’고 회상하면서 여행을 복기하게 되는데 그 부분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도 친구들과 잘 다녀왔고 많은 추억을 쌓았고 몇 편의 동영상을 만들었다.

다시는 절대로 비행기가 골프공처럼 착륙하면 안된다. (20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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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0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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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2
라인댄스

 

나이가 들어가니 성인병으로 고생이 많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한참 다니다가 내가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린다. 그러다 아내에게 물어본다. “나 약 먹는 것 봤어?” “못 봤어요” 그 사람이 못 봤다고 안 먹은 것은 아니다. 안보는 데서 먹었을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요일대로 약을 담아놓고 먹는 작은 통을 사왔다. 통을 보면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게 되니 그 걱정은 줄었다.

성인병을 다루려면 꾸준히 식단을 관리해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 식단관리도 운동도 계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식단관리를 한다고 아침에 밥 대신 오트밀도 먹었고, 채소와 과일만으로도 먹어보았다. 어느 정도 하다가는 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휴가기간에는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왔으니 다시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

먹을 것이 가장 많은 캐나다에서 식단을 관리한다는 것은 물이 많은 해변가에 살면서 위험하다고 물을 멀리 한다거나 또는 록키산맥 근처에 살면서 산에는 위험한 짐승이 많으니 오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냉장고 열어보면 천지가 먹을 것, 지금 먹지 않으면 날짜가 지나버릴 것이 얼마나 많은가.

골프치고 오면서 아내가 “우리 칼국수 한그릇 먹고 들어갈래요?” 하면 어찌 거역할 수 있으랴. 하얀 밀가루, 하얀 설탕, 하얀 쌀 등을 멀리하라고 했는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그 뽀얀 국물을 마다하지 못한다. 그래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 덜 먹고, 가려 먹기는 한다. 주치의가 나에게 주의를 준 정도는 아니지만.

그리고 운동. 여름에는 아내와 같이 골프 치는 날이 많은데 나는 주로 운동 삼아 걷는다. 아내는 힘들다고 카트를 타면서 골프를 치니 큰 효과는 없다. 골프 쳐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골프는 별로 운동이 안 된다. 카트를 끌며 걸어야 그나마 운동이 되는데 그걸 하지 않으니 운동부족이 된다.

동네를 한 바퀴 걷기도 하는데 우리의 코스가 약 4.5Km, 약 6000보 정도가 된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매일 걷다가 어떤 계기로 한번 쉬면 그때부터 또 안 걷기 시작한다. 꾸준히 열심히 일부러 해야 하는데 세상을 살다 보면 꼭 운동에만 전념을 못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운동량이 들쑥날쑥 하고 우리 건강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무슨 운동이든 내가 좋아하는걸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 골프나 스키처럼 하면서 재미를 붙이면 되는데 재미있는 운동은 주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 건 매일 하기가 힘들다. 또한 온 하루를 다 보내야 할 때가 많다. 자주 할 수 있고 재미도 있고 돈도 덜 드는 운동이 없을까? 한번 둘러보자~~.

한인회관에 가보니 포스터가 한 장 붙어있다. 3월에 라인댄스 경연대회를 한다는데 1등 상금이 무려 천불($1000)이란다. 흠! 구미는 당기는데 쟁쟁한 사람들 많은데 내가 될리는 없지만 운동으로써는 그만일 것 같다. 우선 재미있으며 땀을 흘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 스포츠댄스 잠깐 배울 때 가끔 남는 시간에 라인댄스를 한 적이 있다. 같은 동작을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이 리듬만 잘 맞추면 쉽게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빠른 스텝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운동량도 상당하다. 한 시간만 하면 한 시간 걸은 것만큼의 운동량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라인댄스반에 등록을 했다. 매주 수요일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는 날이 더 많구나. 열심히 해서 몸에 리듬감도 익히고 건강도 챙기고 내년에는 천불에 도전해 봐야겠는데 과연 그때까지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라인댄스가 차차면 차차라인댄스, 자이브면 자이브라인댄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각 노래마다 스탭이 다른 것이다. 수없이 많은 노래에 스탭이 다 다르니 이제부터 또 머리 싸매고 스탭 외우고 몸으로 익힐 일이다.

라인댄스로 건강도 되찾고, 날렵한 몸도 만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기꺼이 열심히 노력하겠다. 얼마나 오래 할지는 모르지만…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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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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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3
남쪽으로 골프여행

 

 겨울에 사람을 만나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남쪽에 어디 다녀 왔어요?” 아니면 “이번에는 어디로 갈 건가요?”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남쪽으로 골프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된 거다. 추운 겨울의 토론토를 떠나 따뜻한 햇볕을 일주일 쬐고 오면 겨울이 금새 지나간다.

 1980년대부터 토론토에 골프 붐이 시작되었다. 땅이 좁은 한국에서 살다가 사방에 탁트인 골프장에 가면 우선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았고 게다가 신선한 공기까지 마시고, 당시에는 거의 카트를 끌고 걸어 다녔으니 건강도 챙기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많은 동포들이 편의점을 운영했으니 하루 종일 가게에서 시달리다 하얀 공을 날리는 기분이란, 가끔 Fairway 정가운데로 동반자 중에 가장 멀리 치기라도 한다면 파란 창공을 고공 비행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만나면 골프 이야기였고 골프를 치지 않으면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가 없어 골프를 시작한 사람도 많다.

 동포사회의 많은 행사가 골프 때문에 영향을 받아 없어진 것도 있고 규모가 축소된 것도 많았다. 모임의 화두가 다음주는 어디에서 무슨 골프대회를 하는지, 지난주에는 누가 우승을 했는지, 최근에는 누가 얼마나 잘 치는지, 어느 대회에 상품이 가장 많은지가 화제거리였고 매주 신문 하단에 어느 단체에서 어떤 골프대회를 한다는 광고가 거의 매주 실렸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남쪽으로 골프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솔솔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첫 번째 골프여행으로 30여년 전 Myrtle Beach 로 1주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런대로 추억에 남는 즐거운 여행이었고, 다만 한가지 장거리를 좁은 차 안에서 열 몇 시간씩 버티고 가는 게 힘들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30대 중반의 청년이었기에 견딜만 했다.

 2000년대 들어 많은 여행사들이 멕시코나 큐바, 도미니카 등의 골프 팩키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매년 겨울에 그런 곳을 다녀오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3년 동안 겨울 골프는 냄새도 맞지 못했다. 아니 여행자체가 금지되다시피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팬데믹도 거의 풀렸고 이제 그동안 다녀오지 못한 골프여행이 들불처럼 퍼져 누구는 어디로 갔는지 Facebook에 올라오기도 하고 여기저기 소문이 들린다. 잃었던 3년에 복수라도 해야 하는 양 웬만하면 다 다녀오는 모양이다. 거기에 나도 빠질 수는 없다. 오랜만에 Caribbean을 다녀올까 하고 가격을 살펴보니 팬데믹 전보다 가격이 엄청 올랐다. 전에는 큰 부담없이 다녀왔는데 이제는 부부가 다녀오려면 비용이 신경 써지는 것이다. 

 친구들 모임 중에 이번 겨울골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3명의 부부가 같이 골프를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Tampa로 가기로 했다. 약 10년 전쯤에 친구 여섯 명이 차를 타고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도 콘도를 빌려 여러 군데 골프를 쳤는데 그 중 몇 코스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Tampa에 여러 번 다녀온 고박사(별명)가 모든 걸 준비하고 예약했고, 킹스턴의 장보고(별명)부부가 합류하기로 했다. 고박사는 꽃집을 운영하며 가장 대목인 발렌타인에 일을 하지 않고 골프장 예약하느라 컴퓨터 앞에 붙어 살았다고 아내에게 면박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Golfnow에 핫딜이 나오면 바로 잡아야 하는데 네 명까지는 쉬운데 여섯 명이니 두 조가 나란히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잠깐만 지나면 자리가 없어진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Tampa나 Orlando 쪽으로 큰비용 안들이고 한두 달씩 다녀오는 사람도 많던데 우리는 현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오랫동안 갔다 올 형편은 안되고 그저 일주일 정도 다녀오면 만족한다.

 4년 만에 내려가는 골프여행인데 친구들과 더욱 우정도 쌓고, 추억도 만드는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같이 골프여행 갈 날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친구들아 올해도 부탁한다, 나 좀 잘 챙겨라. (202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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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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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토론토한인회 회장선거에 대한 나의 소견

 

나는 지난 세월 신문을 통해서나 한인회 소식을 들었고 깊게 관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십여 년 전에 지인이 한인회 이사로 같이 일을 하자고 해서 잠시 이사로 활동하다 도저히 나와는 맞지 않아 중간에 사퇴한 적이 있다.

그러다 한인회장을 뽑을 때가 되면 많은 기사가 한인회의 일로 떠들썩했다. 특히 복수의 후보가 출마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다 남의 일이고, 국외자로써 세상 일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덤덤하게 바라봤을 뿐이었다. 관심은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이진수 회장님이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할 때 나에게 이사로 들어와 달라고 말씀을 하셔서 “전 자격이 없어서 안 하겠습니다”했더니 “내가 자격이 있다고 하는데 그럼 된 것 아니에요?”하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분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나의 작은 힘이라도 필요하니까 부탁을 하셨을 텐데 자꾸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이사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사회에 들어가 보니 전임이사들과 회장단의 보이지 않는 알력싸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사실 세상사 어느 곳에든 다툼이 있고 알력이 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체하며 2년이 지났다.

이회장님의 임기 동안 그저 수동적으로 이사직을 수행했다. 이사회비 내고 시간이 날 때는 한인회에서 봉사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나가서 봉사를 했고, 행사 때 내 역할이 있으면 충실히 하려고 노력을 했다. 한인회의 현안문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년이 금방 지나고 이회장님의 임기가 끝나 새 회장에 김정희님이 들어섰는데 이사 임기는 3년이라 최소한 1년은 새 회장과 일을 해야 했다. 2년의 경험이 있으니 한인회 일이 훨씬 익숙해졌고, 김회장께서 나에게 더 많은 업무를 안겨줘서 전보다 더욱 열심히 한인회 일을 보게 되었다.

김회장 1년 차에 이사 임기가 끝나는데 3년 더 봉사하라고 하셔서 아직도 이사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번 이사 임기가 끝나면 나이도 나이니만큼 한인회나 다른 곳의 모든 자리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하며 유유자적하게 살려고 한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감투를 좋아해서 그런 자리를 맡는 거라고. 장담컨대 절대 그렇지 않다. 이사라는 자리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고 한인회 이사라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여기저기 속해 있는 단톡방에 한인회 이사들이 한인회비로 술과 음식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도는데 현 한인회에서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현 회장단의 노력으로 한인회 자선단체로서의 지위가 박탈될 위기에서 거의 벗어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예전 회장단에서 너무 과다한 금액을 음식비로 지출한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기 때문인데, 좋은 건물을 회관으로 가지고 있는데 왜 구태여 비싼 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는지가 지적 사항이라고 했단다. 만약에 한인회비를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비로 지출한다면 자선단체 지위가 어려워질 텐데 알면서 그럴 사람은 없다.

한인회 큰 행사를 하고 나면 뒤풀이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뒤풀이 비용은 개인 돈이었고 절대로 회비는 한 푼도 손을 대지 않았다. 심지어 3월에 열리는 한인회 행사인 마라톤라인댄스 대회에 나가는 상금도 회장 개인 돈으로 지출한다고 한다.

나는 이번 한인회 선거에 김정희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이유는 1. 자선단체 지위를 완전히 또는 거의 회복시켰으며, 2. 어느 회장보다 수많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고, 3. 무슨 일을 할 때 정말 열성을 다해 봉사하는 것을 보았으며, 4. 많은 젊은 이사들을 영입해 한인회 이사회를 좀 젊게 만들었고, 5. 행사 때마다 한인회에 많은 금액을 기부해주었다.

가끔 현 회장에 대한 반대의 소리도 들린다. 누가 무엇을 하든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도 일리가 있는 것도 있으나 어떤 이야기들은 허구에 맞지 않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건너건너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살이 붙고, 뼈가 붙고 해서 최종적으로는 만든 이야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출마하든 구태의연한 인신공격이나 유언비어 등으로 지저분한 선거가 되어서는 안되고, 어떠한 철학으로 어떻게 한인회를 이끌 것인가를 경쟁하는 멋진 선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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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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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5
2023-02-09
늙어간다는 것

 

2주간 휴가를 갔다 돌아온 날, 아내가 부엌에서 밖을 내다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머머머, 담장이 한쪽으로 쓰러져 있네요.” 창으로 내다보니 나무로 된 담장이 옆집 쪽으로 넘어져 있었다. 26일 오전에 눈이 온다고 비행기 일정이 하루 연기가 되었다. 그때 온 그 눈 때문인가 보다.

밖으로 나가 담장을 바라 보았다. 눈이 오다 좀 녹았는데 그 습기가 눈에 더해져 무거워지니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부분이 옆집으로 넘어져 있었다. 내가 살았던 동안에는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고 단언컨대 담장이 지어진 이래로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을 거다.

캘리포니아 휴가 때 조카가 자기 SUV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차가 SUV 중에서는 대형에 속했다. 나는 맨 앞에 타고, 바로 뒤에 큰 처형과 둘째 처형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 셋째 처형과 아내가 탔다. 관광을 왔으니 차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많을 수밖에.

그런데 차를 오르내리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여자들이라 가진 핸드백이 있으니 우선 핸드백을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고, 내리려면 뭔가를 잡아야 했다. 맨 뒷줄에 탄 사람들은 젖힌 의자 사이로 나와 차를 내리려니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한발을 차에 두고 다른 발로 내리려다 여의치 않으면 다리를 바꾸기도 해야 했다. 차가 크니 높이가 더 높았고 노인들이 한번에 발을 땅에 딛기는 좀 무리가 가는 것이었다. 좀 실랑이 하다 결국은 모두 오르내렸지만.

담장을 바라보다 쓰러진 담장을 세우기도 해야 하지만 그 담장이 얼마나 무거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애처로웠다. 그래서 작대기를 들고 담장에 있는 눈을 치우는데 눈이 부서지거나 날리는 것보다는 케잌처럼 쪼개지는 것이었다. 눈이 녹으면서 그 습기가 눈에 스며들어 케잌처럼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 무게가 상당할 테고 그걸 지고 있던 나무가 그만 쓰러져버린 것이 아닌가. 전에는 더 심한 눈발도 견디던 나의 담장 울타리,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눈이 많이 왔을 텐데 잘 견디던 담장이 이제 넘어졌다.

담장의 눈을 치운다고 열심히 작대기로 눈 있는 곳을 내려치는데 한 열 번 정도 치고 나니 내 팔에 힘이 빠지면서 내가 헐떡대기 시작했다. 좀 쉬면서 숨을 고르고 다시 작대기를 휘둘렀는데 또 열 번 정도 치고 나니 이번에는 머리가 띵하면서 맥이 탁 빠졌다. 한참을 쉬었다 다시 하기를 반복하는데 눈을 반도 못 치우고 기진맥진 기권하고 말았다.

우리 처형들도 그까짓 SUV 그렇게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이가 이제 80줄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나머지는 70대 중후반이니 그만큼 몸의 기력이 떨어지고 순발력이 무뎌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다니기가 힘드니 젊을 때 다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 여행도 다리 떨릴 때 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떨릴 때 가는 것이다.

내가 이 집에 산지 21년째, 이 집이 지어진지 56년째. 내가 이 집을 살 때부터 담장은 있었고, 아마도 집을 지을 때부터 있었을 거다. 그 오랜 세월을 아무 문제없이 견뎌낸 우리 집 담장, 여름이면 우리에게 푸르름을 선사해주던 우리 담장, 이제 나이가 50중반이 넘으니 예전에는 쉽게 감당하던 눈 무게가 이제 기껏 25Cm의 눈에 무릎을 꿇은 거다. 한참 때는 50Cm의 눈도, 아니 그 이상의 눈도 그리고 십여 년 전에 무자비하게 온 얼음비도 다 무사히 감당했었는데 이제는 몸의 기력이 떨어져 겨우 25Cm의 눈에 굴복을 했다.

나도 예전 같으면 그깟 작대기 몇 번 휘두른다고 그렇게 쉽게 헐떡대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한참 때는 골프연습장에서 큰 바스켓 하나를 쉬지도 않고 휘둘렀었는데, 어떨 때는 36홀도 무난히 치곤 했었는데…이제는 모두 늙은 거다, 우리집 담장도, 처형들도 그리고 나도.

내가 나의 한계를 깨달았으니 그 한계 내에서 또 열심히 살 것이다. 담장아, 너도 올 한해 푸르름을 보여줄 수 있겠지? (202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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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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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인걸은 간데 없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데 인걸은 간 곳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 이런가 하노라

 

겨울휴가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와 있다. 아내의 언니 두 분이 이곳에 사시고 토론토에서 큰언니가 우리와 함께해 자매 넷이 모였다. 나는 약 9년 만에 캘리포니아에 온 것 같다. 1981년 아내와 결혼 승낙을 받으러 처음 왔었고, 결혼 후에는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아니면 휴가차 자주 들렸었다.

내가 와있는 곳은 Monterey County 인데,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미국, 미국인들이 가고 싶어하는 주가 캘리포니아,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이 Monterey 라고 한다. Monterey 안에 페블비치가 있고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시장을 지냈던 Carmel 시가 있다. 그러니 진주 중에 흑진주에 와있는 것이다.

예전에 처갓집에 오면 토론토에서 내려간 사람이 6명에 몇몇 동네 분들이 놀러 왔었다. 식구가 많기도 했지만 식사를 하게 되면 한 20여명 정도가 집안에 있는 온 상을 다 꺼내 깔아놓고 밥을 먹었다. 그 많은 음식을 해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또 얼마나 많은 설거지가 나오는가? 설거지는 나이가 가장 어린 아내의 몫이었다.

힘들어 하는 그녀를 보다 못해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처형들이 난리가 났다. 사위가 설거지 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그때 내가 선언을 했다. 그러면 내 아내를 시키지 말라 그러면 나도 하지 않겠다. 돌아온 답은 “그럼 김서방이 해”.

캘리포니아에 오면 항상 둘째 동서가 날 데리고 다니며 여기저기 구경을 시켜주셨다. 그런데 그분 운전을 얼마나 험하게 하는지 옆에 탄 내가 같이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다. 처음에는 어디 가자고 하면 겁이 났는데 그것도 경험이라고 점점 적응이 되기는 했다.

집에 돌아오니 처형이 묻는다. “오늘 간 곳은 어땠어요?” 나의 대답 “좋았어요, 그런데 아랫배에 굳은살이 생기네요?” 무슨 뜻인지 의아해서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예, 형님 차 타고 다니려니 옆에서 같이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야 하니까 아랫배에 힘을 주게 되잖아요”.

우리가 이곳에 온 다음날 홍사부님 부인이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유리창 밖으로 태평양이 환하게 보이는 멋진 전망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대접 받았다. 9년 전 이곳에 왔을 때 홍사부님과 골프를 같이 쳤었다. 그날 14명인가 같이 골프를 쳤는데 그분이 그만 한 홀에서 홀인원을 하셨다. 그래서 위의 식당에서 거나하게 한잔 사셨는데 밥 먹기 전에 생굴까지 대접받은 기억이 있다.

홍사부님은 우리 처형들에게 골프를 가르쳐줘서 홍사부라 부른다. 그리고 셋째 처형 친구분인 미세스 Smith 께서 같은 식당에서 맛있는 것 사주시고, 음력설날에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떡국을 대접해주셨다.

세상살이가 뭐 별거겠는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며 내가 원하는 것 하며 살면 되는 것을.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바글바글 하던 그 멤버들의 거의 반이 약 10여 년 사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니 밥은 예닐곱 명이 먹고, 설거지도 그리 걱정할 것이 못 된다. 같이 골프 치러 다니며 여러 가지 추억을 쌓았던 형님들, 주위 분들, 그 분들이 안 계시니 허전하다.

내가 몬트레이 절경을 보며 탄성을 지를 때 같이 추임새를 넣어주던 그 인걸들은 다 어디 갔나, 멋진 태평양은 그대로 인데, 그분들과 같이 놀던 그 시절은 정녕 꿈이었나 보다. (202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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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0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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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6
반세기만의 해후-내 친구 모정식

 

2주전 캘리포니아에 왔다. 캘리포니아에 엄청난 비가 내렸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는데 처음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홍수 폭탄을 맞았다고 미 대통령 바이든까지 왔을까. 우리가 온 곳은 Monterey라고 샌프란시스코의 두 시간 남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오기 전부터 한 5일간은 LA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LA에 내 친구 모정식이 자기네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70년대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내 친구 모정식, 만나면 약 반세기 만에 만나는 것이 된다. 99년도 내가 한국 나갔을 때 잠깐 만난 적이 있긴 하다. 그때 그가 나에게 자기도 미국을 들어가는 수속을 밟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먹고 살기 바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작년 5월, 시카고 누나네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전화가 울렸다. 차 화면에 번호가 좀 생소한 번호다. “여보세요?” “혹시 이러이러한 김재기씨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재기야, 나야 정식이, 모정식” 그래 모정식…너의 그때 학창시절의 정식이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문자로 카톡으로 그와 계속 대화를 해 나갔다.

캐나다의 겨울이 추우니 자기집에서 겨울을 나고 가라고 했고, 혹시 우리 아이들이 LA 쪽으로 오거든 자기집에서 묵고 가라고 했고, 이번 캘리포니아에 오거든 자기집은 꼭 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 정식아 이번에는 너를 꼭 보고 싶다.

그와 대화 중에 그가 내 짝꿍이었다고 했다. 그랬나? 맞다. 내가 캐나다에 온 후에 가장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이 정식이었다. 그때 내 편지에 자꾸 영어가 섞이게 되자 그가 답장을 보냈는데 영어가 너무 많이 섞여 읽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영어는 안 쓰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건 모정식의 영향이 크다.

이곳에 오자 홍수로 캘리포니아의 길이 끊긴 곳이 많아 위험하다고 가네 마네 의견이 분분했다. 비행기 타고 가려니 그것도 복잡하고, 버스나 기차는 열 몇 시간씩이나 걸리고, 떠나가는 금요일 전날까지 결정을 못해서 내가 선언했다. 내일 아침 차 빌려주는 곳에서 차 빌려 나 혼자 간다. 그러자 셋째 처형이 우리와 동행하기로 하고 셋이 길을 떠났다.

금요일 오전 8시에 출발해 6시간 반 만에 친구네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 들어가는데 집 입구부터 별천지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갖은 꽃에, 포도나무 넝쿨에, 금붕어들이 뛰노는 항아리, 항아리에 물 떨어지는 소리, 이건 완전히 화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나온 정식이,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옛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오 헨리는 ‘20년 후’를 썼는데 나에게는 ‘50년 후’라고 하면 되나?

그의 집안에 들어가니 집안도 밖에 못지않게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비싼 걸로 고급스럽게 꾸민 것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집을 꾸몄다. 집 단지가 산 위에 있어 뒤뜰이 숲으로 이어졌는데 뒤뜰로 쭈욱 내려가면 계곡이 있고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내 친구 정식이 부부의 취향에 딱 맞는 그런 집이었다.

부부는 에나하임에서 두 곳의 한의원을 운영하며, 외아들은 종합병원 내과의사로, 며느리는 수학자로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데 수학경시대회를 주관하는 곳에서도 일을 한다고 했다. 아들마저도 멋지게 잘 키운 정식이, 집 뒤의 덱크도 혼자 설치하고, 요리도 얼마나 럭서리하게 잘 하는지 내 친구를 재발견하는 귀한 휴가였다.

4박 5일 동안 그의 지극정성을 곁들인 대접을 받았다. 아침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특식으로 우리가 일류 호텔의 조식을 먹는 듯했고, 낮에는 여러 관광지 등을 안내하였으며, 오랜만에 그의 집에서 노래방을 열고 옛 노래들을 불렀고, 부부가 운영하는 한의원 두 곳을 방문하는 등 친구에게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편하게 다녀가라고 배려를 해주신 미세스 모와 바쁜 와중에 아버지 친구를 대접하러 악천후 속에 와준 그의 아들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모든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새로 개업한 한의원이 대박 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고맙다 정식아, 또 보자. (20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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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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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9
알로 변한 아나콘다

 

건강이 화두다. 특히 해가 바뀌고 새해인사를 나눌 때면 모두 건강 이야기다. 젊을 때도 건강하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만 나이가 60이 넘고 70을 바라보면서 더욱 많이 듣게 된다. 나는 건강한 편이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알통이 불끈불끈하게 튼튼하진 못했어도 병치레는 별로 해보질 않았다. 그저 일년에 한번 정도 감기를 앓던가 했을 뿐이지 건강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다 나이가 40중반쯤에 High Cholesterol 이라고 가정의가 조심하라고 했다. 그때는 약을 먹기는 애매한 경계선이라나?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조심할 수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니까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가령 걸어가는 길에 웅덩이가 있다거나 부딪힐 만한 전봇대가 있다면 피하거나 또는 위험한 짐승이나 해충들이 보인다면 도망가기는 쉬운데 보이지 않는 것을 조심하라…어떻게?

결국 50정도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당도 없고 혈압도 정상이라 그런대로 건강은 유지한 편이다. 그러다가 약 4년 전 원래의 가정의가 은퇴를 하고 현재의 가정의로 옮기자마자 첫 번째 피검사에서 결과가 좋지 않았는지 빨리 들어오라고 한다. 예감이 상당히 불길했고, 드디어 마주한 가정의가 나에게 당이 있으니 약을 먹어야 한단다.

우리 부부가 몇 년 전부터 같이 당약을 먹기 시작하고 걷기도 같이하는 등 나름 노력을 했는데 얼마 전 아내는 수치가 내려갔으니 좋아졌다고 하고 나는 수치가 잘 변하지를 않으니 약을 바꿔야 한단다. 그래서 바꿨다 더 독한 걸로. 그런데…

내가 위에서 건강체질이라고 했다. 나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채소, 곡물, 고기, 국물 등 주는 대로 있는 대로 잘 먹는다. 그리고 잘 잔다. 누우면 별 생각없이 바로 골아 떨어진다. 잠자리가 바뀌어도 특별히 불편하지만 않다면 잘 잔다. 그리고 특히 배출을 잘했다.

아침에 식사하고 나서 한 30~40분 후면 시원하게 배출을 했는데 그야말로 굵은 아나콘다 한 마리가 쭉 뻗어있는 것 같은 그림이었다. 먼 길을 가기 전에는 속을 편하게 하려고 책 한 권 들고 화장실에 한 30분 정도 앉아있으면 스르르 하고 배출을 했다. 배에 찬바람이 닿지 않으면 배탈도 잘 나지 않고, 거의 내 스스로 조절할 수가 있었다.

며칠 전 동네 산책을 하다가 배에 신호가 와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왔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도대체 아무 진전이 없는 거다. 아니 좀 전에 배 아프다고 난리를 치더니 왜 이러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 3일 동안 배출을 하지 못했다. 웬일이람 하루에 한번은 꼭 배출을 했었는데…

먹는 건 예전 그대로인데 배출이 잘 안되니 사는데 큰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영 께름칙하고 시원한 기분은 안 난다. 그리고 오래 앉아있다 보면 어떨 때는 정말로 어렵게 어렵게 배출을 하게 되는데 예전의 아나콘다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무슨 새알 같은 것들이 모여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아내 이야기로는 당약을 바꿨기 때문에 변비가 온 것 같다고.

아나콘다였을 때는 아무리 굵어도 하수도로 빠져나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대가리만 들어가면 일자로 쭉 나가니까. 그런데 알들이 모여있을 때는 서로 먼저 나간다고 아우성 치다가 막혀버리는 수도 있다. 그래서 알 한두 개가 모이면 바로 빼내야 한다. 남자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는데 일 보면서 힘주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아졌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부고소식이 들려온다. 연로하셔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지만 많은 나이도 아닌데 아파서 돌아가시는 분들도 꽤 있다. 그리고 투병중인 분들도 많다. 죽고 사는 거야 우리들의 영역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건강은 우리의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 있다. 좀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투자해야 하지만 평생 일을 해왔으니 건강하게 살면서 이제는 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좀 즐기다 가고 싶다.

당이여 나에게 물러나고 아나콘다여 나에게 다시 돌아오라. (20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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